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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통일부를 없앨 걸 그랬나

입력
2008.08.1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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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정부조직 개편 때 통일부를 외교부에 통폐합하려고 했다. 나는 이 방침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남북관계 경색이 계속된다면 통일부가 필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통일부가 하는 일이라곤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사건에 대한 브리핑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종적이 묘연하다.

대신 외교부가 바쁘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 금강산 사건을 넣었다 빼랴, 비동맹회의 성명에 남북기본합의서 준수도 포함시키랴, 한미정상회담에 북한 인권문제를 포함시키랴 정말 바빴다.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만 있으면 놓치지 않는다. 국제무대에서 해묵은 남북대결 구도를 만들어 내느라 이 염천지절(炎天之節)에 비지땀을 흘린다.

대북 압박으로 얻은 게 뭔지

혹자는 말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북한에 퍼주기만 하고 물렁하게 하여 얻은 게 무어냐고. 북한을 얼마나 변화시켰냐고. 핵 실험도 못 막았고….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부터 대북 압박을 구사하는 것은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북 압박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굴복시키기는커녕 더 돌아서게만 했을 뿐이다. 북한은 어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오찬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마련한 이 대통령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동석을 걷어찼다. 남북 선수단의 앞뒤 입장도 거부했다. 금강산 사건 진상조사에 응하라고 압박을 가했지만 불필요한 인원 철수 조치로 맞섰다.

북한이 얼마나 더 버틸지 더 기다려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북 압박정책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더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쓰기 전까지 대결과 갈등의 50년을 되돌아 보면 명백해진다. 압박과 대결로 일관했던 그 시기 북한을 달라지게 한 게 과연 무엇이 있었는가. 적대적 공존의 그 시기는 김일성ㆍ김정일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했을 뿐이다.

수시로 무장공비를 내려 보내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어부들을 납치해 갔다. 그 50년 동안 북한이 변화한 것보다는 지난 10년 동안 변한 게 훨씬 많다. 그러면 핵 실험 강행은? 햇볕정책 잘못이 아니다. 미국이 지금처럼 노무현 정부가 주장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을 따랐더라면 핵실험은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의 대북 압박정책을 냉철하게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창조적 실용주의를 외쳤지만 구호에 그쳤을 뿐, 정작 창조도, 실용도 없었다. 대북 정책에서 이념을 배제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념 일변도였다. 이제 진지하게 실용주의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김정일 위원장이 남북관계 경색을 풀기 위한 결단을 하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됐기 때문에 지지층의 눈치를 봐야 하는 남한의 대통령보다는 전권을 쥐고 있는 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리는 것이 빠르다. 그러기 위해서는 김 위원장이 실용주의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하지만 그토록 김정일 체제의 경직성을 비난해온 사람들이 김 위원장에게 먼저 유연성을 발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11일 이후 남북상황이 걱정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실용주의를 외친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 김 위원장보다 낫지 않겠는가. 그래야 통일부가 할 일도 생겨난다. 통일부가 할 일이 없는 기간이 더 이상 길어져서는 안 된다. 통일부가 할 일이 없어 외교부가 바빠지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 국방부가 바빠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모레 11일은 금강산 사건 발생 꼭 한 달이 되는 날이자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방침을 미 의회에 통보한 지 45일이 되는 날이다. 현재로서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확정이 어려운 분위기다. 그날 이후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남북관계를 풀어갈지 걱정스럽다.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 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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