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원래 한 달 전인 7월 초에 방한할 예정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4월 방미에 대한 답방 형식이었다. 그리고 이때 한미동맹의 미래비전에 관한 공동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외치는 촛불시위에 막혀 방한을 연기했고, 이번 방문 결과로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크게 관심을 끌 만한 중대한 내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선언은 두 가지 점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 외교안보 상의 숙제를 남겼다.
'공동의 가치' 과연 얼마나 있나
첫째, 한미동맹의 미래와 관련된 한국의 역할에 관한 숙제이다. 두 정상은 한미동맹을 '전략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구조로 발전'시켜 '지역 및 범세계적 차원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 좋은 말만 나열한 것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한국외교의 핵심적인 과제를 내포하고 있는 내용이다.
대한민국은 이 대통령이 취임사에 밝혔듯이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한반도와 주변 4강 외교에 매달려 있을 수는 없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경제력에 어울리는 글로벌 외교를 펼쳐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한반도를 벗어나 얼마나 미국과 함께 할 수 있는가. 두 정상이 언급한 '공동의 가치와 신뢰'가 두 나라 사이에 얼마나 존재하는가.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초국가적 범죄와 에너지 안보'와 같은 문제들을 위해 미국과 얼마나 협력할 수 있는가.
이런 문제들은 모두 국내정치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는 것들이다. 세계로 뻗어가는 외교를 해야 된다고 하지만 아직 이를 위한 준비가 너무나 안 돼 있다. 한국의 글로벌 외교를 위해 미국의 지원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 지원의 대가를 지불할 준비는 안 돼 있다.
대북 억지력을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지만 주한미군이 한반도를 벗어나 활동하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는 안 돼 있다. 글로벌 외교를 말로만 떠들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글로벌 외교와 한미동맹을 어떻게 연계시킬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방침이 필요하다.
둘째, 대북정책과 관련된 숙제이다. 두 정상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고, 이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원했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언급을 공동성명에 넣는 데 합의했다. 한미동맹의 견고함을 북한에 분명히 보여 주었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과정에서도 한미 간의 공동보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이러한 한미공조에 북한이 당장 굴복하고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원색적인 대남비방이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에서 보듯, 북한은 당분간 강경자세를 유지하며 한국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긴장을 고조시키는 조치를 취할 개연성도 높다. 6자회담의 진전도 불투명해질 수 있다. 이 틈을 타고 국내 진보세력들의 대정부 비난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외교안보 상의 위기국면처럼 보일 것이다.
남북문제에 발목 잡힐 위험성
글로벌 코리아로 뻗어나가야 하는 한국외교를 남북문제가 또 다시 발목을 잡는 형국이 초래되는 것이다. 대북정책 우선을 주문하는 요구도 커질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경험은 그래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외교안보노선의 혼란은 국내정치적 혼란만 가중시키고 북한에 나쁜 시그널을 줄 수 있다. 한미동맹도 다시 흔들릴 수 있다. 친구 잃고 욕 먹고 뺨 맞는 꼴이 되는 것이다. 외교당국의 신중한 대비와 대처를 주문한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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