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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19> 미국의 로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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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19> 미국의 로비스트

입력
2008.08.06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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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수많은 호텔 중 가장 역사가 깊고 아름다운 호텔로는 아마도 윌라드 (Willard) 호텔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1850년에 세운 이 호텔은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에 자리한 백악관 바로 옆에 있어 흔히 `펜실베이니아 에비뉴의 왕관’ 으로 불린다.

고색창연한 프랑스풍 장식이 화려한 이 호텔 로비 (lobby) 에는 늘 정장 차림의 신사들이 모여 뭔가 수근거리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들은 주로 정치에 깊이 관련돼 있는 변호사들이 대부분이었다. 늘 로비에 몰려 있다고 해서 이들을 로비스트 (lobbyist)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역 의원 시절 내게는 하루에도 몇 명씩 로비스트들이 찾아왔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그램을 추진할 경우, 로비스트들은 자세한 관련 통계들과 그 안을 추진하는 수십 개 시민단체들의 이름이 적힌 간단한 리포트들을 들고 찾아온다. 심지어는 법안 초안을 직접 작성해 갖고 오는 경우도 있다.

워싱턴에서 의정 활동을 하면서 의원들은 종종 로비스트들을 상대로 정치자금 모금활동을 펼친다. 나도 여러 번 했다. 우선 내 사무실에 찾아왔던 로비스트들, 나와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로비스트들에게 모금행사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초청장을 보내고 며칠 뒤 직접 전화로 참석을 부탁한다. 모금운동을 위한 대화나 전화통화는 의사당이나 의원 사무실 안에서는 절대 할 수 없게 돼 있고, 반드시 밖에 나가서 해야 한다. 내가 있던 의원 사무실 (캐넌 빌딩) 바로 건너편에는 공화당 당사가 있고 그 옆에 공화당에서 운영하는 4층짜리 연회 건물이 있는데, 공화당 의원들은 모금행사를 항상 이 곳에서 연다. 또 로비스트들의 참석을 부탁하는 전화도 이 건물에서 하는데, 의원들의 이런 전화통화를 위해 공중전화박스 만큼 작은 방들을 설치해 놓고 있다.

나의 모금 리셉션은 30명쯤 모이면 많이 모이는 것이다. 그나마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열심히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의원이 로비스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화해서 돈을 구걸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 자존심이 무척 상하기도 한다. 하지만 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장 쉽게 모금할 수 있는 방법이라 많은 의원이 이 방법을 쓴다.

문제는 나중에 이 로비스트로부터 어떤 부탁을 받았을 때 어떻게 이를 거절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로비스트와 의원 간의 `끈끈한’ 관계는 항상 언론의 도마에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언론은 항상 로비스트와 의원들의 뒤를 캐기를 좋아한다. 내가 생각해도 로비스트를 상대로 정치자금 모금운동을 하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로비스트들이 비싼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것 때문이다.

이들은 기부 한도액인 1,000 달러를 들고 오는데 반드시 회사 명의가 아닌 개인 수표여야 한다. 30 명만 모여도 3만 달러고 경비는 별로 안든다. 지역구에서 3만 달러를 모금하려면 준비에 걸리는 엄청난 시간도 시간이지만, 경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바로 이 모금활동이 로비스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특정 의원 사무실을 방문할 수 있는 소위 특권 (Privileged Right)을 주게 된 셈이다.

한번은 교포들의 모금행사에 갔었는데 휘황찬란한 고급호텔에 한국에서 초청해온 가수들까지 있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 날 계산해 보니 모금한 돈이 3만 달러인데 경비가 4만 달러여서 결국 1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 신문에는 약 10만 달러쯤 걷혔을 것이라고 보도됐다. 마치 교포들 돈을 내가 다 쓸어간 것 같은 내용이었다. 그러나 차마 1만 달러의 적자를 냈다고 밝힐 수 없었다.

물론 대통령 후보의 경우는 1인당 2,000 달러, 골든 테이블은 10만 달러이니, 이 정도라면 몰라도 의원들처럼 200달러짜리 저녁이라면 적어도 400 명이 돈을 들고 와야 돈을 좀 만져 본다. 400명 가운데 50명은 불참, 50명은 공짜다. 시장이나 시 의원들, 동네 유지들, 상하원 의원들 가운데 그냥 참석해 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 된다고 믿는 고위 공직자들은 전부 공짜다. 나도 최근 의정활동에 대한 설명을 준비해야 하며, 홀 안에서 테이블마다 찾아 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 참석해 준 데 대한 감사표시도 해야 한다. 거기다 예외 없이 끝날 쯤이면 기자들에 둘러싸여 예리한 질문들에 답변을 해야 하니 밥이 모래알 같아 제대로 식사도 못한다.

이 야단을 치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가도 그 다음 날 계산해 보면 실속은 거의 없다. 350명중 돈 내는 사람들은 300명 밖에 안 왔다고 한다. 300 명에게 받은 돈으로50명 공짜비용을 갚고, 호텔에 팁 주고, 수고한 봉사자들에게 감사 표시, 호텔 주차비, 음악, 조명, 설비 비용까지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래서 반이라도 건지면 대성공이다.

반대로 로비스트를 통한 모금은 저녁도 없고, 연설준비도 필요 없고, 장소도 공화당 건물이어서 거의 무료나 마찬가지다. 사이다 몇 병에 스낵 두어 접시면 충분하다. 로비스트 30명만 모이면 3만 달러가 걷히는데, 경비는 1,000 달러면 된다. 이래서 로비스트들을 상대로 하는 모금운동을 선호하게 되고 그 대가로 로비스트들이 내 사무실을 수시로 방문할 수 있게 허락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는 돈이란 말이 생각난다.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가 늘 중요하다. 이번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를 봐도 초반에 유력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에게 패한 것은 결국 돈을 모으는 데서 뒤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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