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 담론을 읽는 두개의 키워드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다. 근대로의 전환기 이래 우리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의 피해자라는 입장에서 민족주의 담론을 쏟아냈다.
탈민족ㆍ탈국가주의 담론의 생산기지로 꼽히는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8, 9일 '근대한국- 제국과 민족의 교차로'를 주제로 여는 국제학술대회는 제국주의의 대항 담론으로 발전한 우리 민족주의 담론이 내재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폭로한다.
약소국가의 민족주의는 절대선인가? 20여명의 국내외 학자들은 제국주의와 '싸우면서 닮아간'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꾀한다.
■ "진정한 역사는 무력의 역사"- 상무 사관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일제 시기 국학자인 안확(1886~1946)의 '무사적 민족론'을 통해 구한말~식민지기 국학자들의 민족주의 사관의 성격을 고찰한다.
안확은 조선인의 속성을 '안일, 나태'로 멸시하는 서구와 일본의 시선에 대항, 민족적 자아의 회복수단으로 고구려의 상무(尙武)정신을 주목하고, 조선 민족의 호전성의 증거들을 수집했다.
그가 사론 '조선민족사'에서 고구려, 백제, 부여계 나라들을 "일호령에 한족을 무찌르고, 재호령에 북방 일대를 통일"했다고 묘사하는 대목은 외족과의 혈투에서 민족의 생존을 보장할 힘을 어디에서 찾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박 교수는 이같은 '고구려 열'은 안확 뿐 아니라 신채호, 문일평, 황의돈, 장도빈 등 다수의 당대 사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라고 부연한다. 특히 이같은 상무사관은 통일 이전 신라인들의 전투적 정신을 부각시키고 이민족과의 정복전쟁을 강조했던 이기백의 사관으로 이어져 해방 후 한국인들의 역사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 '무사의 민족'이라는 안확 식의 조선 민족 상(像)은 제국주의 시대의 주류 담론인 적자생존론, 생존투쟁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름의 시대적 의미를 지닌다"면서도 "그러나 대한민국이 이제 자본주의 세계질서의 중진국, 일종의 아류 제국주의 국가가 된 상황에서 전투성과 정복성에 대한 강조는 주변국가들을 자극해 갈등의 증폭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 조선은 소제국을 꿈꿨다 - 교린 정책
정다함 고려대 강사는 조선 전기의 여진ㆍ대마도 정책을 '교린(交隣)'으로 기술해온 근대 한국사학의 태도는 소제국을 꿈꾸는 조선의 욕망을 은폐하는 위선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학계가 고구려, 발해, 고려 왕조가 여진의 전신인 말갈과 맺은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로 규정하는 것과 달리 조선의 대 여진 관계를 교린이라는 호혜관계로 규정한 것은 국사를 근대를 향한 끊임없는 발전과정으로 파악한 내재적 발전론이 처한 딜레마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조선은 근대로 발전하는 근세였기에 왕조 초부터 유례없는 문화적ㆍ과학적 발전을 이뤘지만 결과는 근대화의 실패로 나타났고, 그 원인을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꼽는 내재적 발전론의 입장에서는 15세기에 조선이 여진 및 대마도에 행한 폭력적 행태를 제국주의로 규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이 주변국에 무력과 문화적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소제국주의의 행태를 명백히 보여줬음에도 이를 교린으로 규정한 것이나 조선의 폭력을 조선을 노략질해온 '오랑캐'에 대한 '응징'이라고 정당화하는 것은 한국사학계의 민족주의적 위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정씨는 꼬집는다.
이번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임지현 한양대 교수는 "식민주의의 과거를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식민주의의 희생자인 우리도 적절한 역사적 조건만 주어지면 언제든지 식민주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자기성찰"이라며 "잠재적 가해자로서의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제국이 강요해온 반인류적 억압과 불평등의 게임 규칙을 거부하려는 한반도의 실천은 전지구적 울림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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