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좀 흥행이 될 만한 작품이 없나?”
영화판이든 다른 미디어든 간에 작품성이 뛰어나도 흥행이 안 되면 제작자들은 기피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서 잠깐. ‘작품성은 뛰어난데 흥행이 안 된다’는 말이, 말이 되는 말 일까? 고민 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은 관객들이 예민해서 뛰어난 작품성을 가진 영화인지 아닌지를 냉정하게 판단한다. 그러니까, 흥행이 잘 되면 어느 정도 작품성도 있다고 봐야한다.
영화판에는 묘한 징크스가 있다. 시대 별로 다르긴 하지만, 같은 내용의 작품이 만들어 질 때마다 대박을 터뜨리는 것이 있고 만들 때마다 깨지는 것이 있다. 또한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슬픈 영화가 잘 될 때가 있고 코믹한 영화가 잘 될 때가 있다. 60년대에는 정진우 감독의 ‘초우’, ‘초연’, ‘구름’과 같은 애틋하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가 관객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았다. 또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체루탄’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정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번’ 시리즈이다.
그런데 언제 만들어도 흥행해서 실패하지 않는다는 작품이 있다. 바로 ‘춘향전’이다. 흥행불패 춘향전--과연 그럴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다. 겉으로 보기에는 관객이 어지간히 많이 들어온 것 같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허무했던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미국도 시리즈 영화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수퍼 맨’과 ‘배트 맨’이다. 수퍼 맨 또는 슈퍼 맨이라고 부르는 이 영화는 원래 만화로 1938년에 선을 보인다. 그 후 라디오 드라마, 영화, TV, 신문 만화, 비디오 게임 등등으로 만들어지며 미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지만 이것도 매번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배트 맨도 예외는 아니다. 역시 만화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가 극영화로 대박을 터뜨린다. 팀 버튼 감독과 주연배우 마이클 키튼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이 영화도 리턴즈 (1992), 훠에버 (1995), 배트 맨과 로빈 (1997), 비긴스 (2005), 그리고 드디어 더 다크 나이트 (2008)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주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모두 다 흥행에 성공을 했을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의 춘향전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열녀 춘향을 소재로 한 예술 장르는 어떤 것이 있을까?” 라고 묻기보다는 “어떤 것이 없을까?” 라고 묻는 것이 옳을 것이다. 대답은 ‘없다’가 맞는다. 판소리로, 시로, 소설로, 오페라, 영화, 연극, 창극, 뮤지컬, 무용, TV 드라마 그리고 애니메이션 등으로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 춘향전이다. 제목도, 춘향전, 춘향, 대 춘향, 춘향뎐, 사랑 사랑 내 사랑, 열녀 춘향, 쾌걸 춘향 등등.
이토록 많이 제작된 춘향이가 몇 퍼센트나 흥행 성공을 했을까? 춘향에 관한 테마로 쓴 논문이 많이 있겠지만 흥행에 초점을 맞춘 논문은, 과문한 탓인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는 영화로 만들어진 춘향전을 살펴보기로 한다. 해방 이전인 1923년부터 제작되어 왔다. 35년에는 이명우 감독이 당시 미인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문예봉을 춘향으로 캐스팅해서 만들었고, 해방이후 1955년에는 이규환 감독이 연출을 하고 조미령이 춘향역을, 이민이 몽룡역을 맡았다. 이때는 여러 가지 화제거리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되었다. 당시 조미령의 남편 이철혁이 제작했는데 크게 히트 했고, “한국영화도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준 작품으로 기록 된다.
조미령은 가장 한국적인 미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녀는 그 후 남편과 이혼하고 최동원씨와 결혼,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행복한 가정을 꾸미게 된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하와이에서 만났을 때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몽룡역의 이민은 키가 크고 매력적인 미남이라서 여자 팬들이 항상 주변을 맴 돌았다. 일본을 무대로 활동을 했는데 90년대 이후로는 소식이 없다.
1958년에는 안종화가 감독하고 눈물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던 전옥이 춘향역 맡고, 한국 무용을 하는 최현이 몽룡역을 했다. 전옥은 배우 최무룡의 장모이며, 최민수의 외할머니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화제를 일으킨 춘향전은 1961년의 신상옥과 홍성기 감독의 대결이다. 홍 감독은 당시 자신의 부인인 김지미를 내 세웠고, 신 감독은 역시 자신의 부인인 최은희를 춘향으로 내 세웠다. 이몽룡역은 최무룡과 김진규가 각각 맡았다. 결론은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이 압승이었다. 홍 감독의 ‘춘향전’이 4만 명 정도의 관객이었고, 신 감독의 영화는 무려 40만 명이 들어 왔다.
춘향을 소재로 한 영화는 그 후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71년 문희, 신성일 주연, 이성구 감독 작품에서 99년 임권택 감독 이효정, 조승우 주연의 ‘춘향뎐’에 이르기까지 10여개 작품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춘향역을 맡은 여배우들은 당연히 최고의 인기배우 대열에 들어간다는 전통을 이어온다. 문예봉, 조미령, 김지미, 최은희, 문희, 홍세미, 장미희, 김혜수, 김희선 등등이 그들이다.
서양에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고, 한국에 ‘춘향전’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의 내용은 많이 다르다. “로ㆍ줄”은 비극이고 “춘향”은 해피 엔딩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전해지고 있던 것이다” 라고 끝을 맺어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아한다. 춘향에는 양념으로 방자와 향단이 있으며, 증오의 대상이 되는 변학도와 주책스런 월매도 있다. 그리고 어사출두 장면 같은 시원한 감동도 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흥행불패의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백전백승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시대에 맞춰 새롭게 포장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역대 춘향전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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