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은 나이에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는 소비에트 권력의 테러에 희생된 6,000만명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농민이 강제수용소에서 파괴되는 과정을 그린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는 그런 문학적 소명감에서 탄생했다." 이반>
스위스와 미국에서의 20년에 걸친 망명생활을 마치고 1994년 러시아로 귀향을 앞뒀던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 뉴요커 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말이다.
2차대전에 참전해 동프로이센 지역에서 장교로 복무하던 중 친구에게 스탈린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보낸 것이 적발돼 솔제니친이 겪어야 했던 10년여의 수용소 생활은 '억압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하는 그의 작품세계의 기본적 질료가 됐다.
솔제니친은 흐루시초프 시대인 1962년 해빙기를 틈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를 발표하며 문명(文名)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비롯해 <수용소 군도> , 희곡 <사슴과 라게리의 여인> 등은 그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스탈린 시대의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수용소 분위기를 고발한 것들이다. 사슴과> 수용소> 이반>
그의 작품활동은 바를람 샬라모프(1954~1973)의 <콜리마 이야기> , 블라디미르 니콜라예프 보이노비치(76)의 <우리는 여기에 산다> 등으로 이어지는 소련의 이른바 '수용소 문학(camp literature)'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는> 콜리마>
특히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는 전체주의의 억압에 대한 고발이라는 주제의식 뿐 아니라 수용소 죄수들의 은어를 사실감 있게 사용하고, 참혹한 수용소 생활과 죄수들의 유머를 대비하는 등 구성과 문체 면에서도 탁월한 수작으로 꼽힌다. 이반>
솔제니친의 역사인식은 근본적으로 볼세비키 혁명으로 러시아의 역사가 왜곡되고 그 결과 스탈린이라는 괴물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인식 아래 1972년 파리에서 출간된 <수용소 군도> 는 발표 직후 소련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소련을 지지했던 좌파 지식인들에게 결정타를 안겼기 때문이다. 수용소>
한국에서도 솔제니친의 문학은 전체주의의 공포를 폭로하는 저항의 문학으로 읽혔지만,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적 의미에 갇혀 협소하게 해석되면서 오히려 그 의미가 축소되기도 했다. 1970, 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야만적 자본주의의 대안을 꿈꾸던 한국의 저항적 지식인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외면당한 이유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는 "솔제니친은 그 전까지 이야기되지 않았던 스탈린 시대의 기록을 처음으로 드러낸, 언더그라운드 문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작가"라며 "억압에 대항하는 진실에 문학의 가장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가"라고 평했다.
박현섭 서울대 노문과 교수는 "그는 인간가치의 문제를 모럴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철저한 사실주의적 기법을 사용하는 등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러시아 리얼리즘의 계보를 잇는 작가"라며 "슬라브주의에 경도되는 등 다소 보수적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정점에 있는 작가"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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