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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E'/ 우주에 홀로 남은 가장 인간적 존재, 청소로봇 월-E의 별빛같은 사랑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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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E'/ 우주에 홀로 남은 가장 인간적 존재, 청소로봇 월-E의 별빛같은 사랑얘기

입력
2008.08.0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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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어느날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창립 멤버 존 라세터와 피트 닥터 등은 점심을 함께 하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당시 세인들에겐 낯설기만 했던 회사 이름 픽사를 훗날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동의어로 지구촌에 각인시키게 되는 <벅스 라이프> 와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의 밑그림이 이들의 눈동자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이날 ‘우주에 홀로 남겨진 가장 인간적인 존재가 결국 기계’라는 아이디어도 픽사 창립 멤버들의 맘을 사로잡았다. 바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청소 전용 로봇 ‘월-E’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14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깎고 다듬어진 아이디어를 캔버스로 삼아서일까. 첨단 컴퓨터그래픽을 붓 삼은데다 SF라는 영화적 물감이 칠해진 작품임에도 애니메이션 <월-e> 는 역설적으로 관객들의 아련한 추억을 자극한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스타 워즈>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미지와의 조우> 등은 나로 하여금 외계 세상이 정말 존재한다는 확신을 주었고, 그 감동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킬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는 앤드류 스탠튼 감독의 발언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굳이 명명하자면 ‘빈티지 SF 애니메이션’이라고 할까.

쌍안경을 연상시키는 눈과 태양열 전지에 의한 작동, 무한궤도를 이용한 이동, VHS테이프가 닳도록 할리우드 고전 뮤지컬 <헬로 돌리> 를 반복해서 즐기는 월-E의 모습은 아날로그 그 자체다.

700년 동안 지구에 홀로 남아 쓰레기를 처리하며 자연스레 형성된 월-E의 ‘인격’도 디지털과는 거리가 멀다. 죽음의 혹성이 된 지구에서 생명체를 찾는 탐사 로봇 ‘이브’에게 연정을 품고 다가가는 모습은 20세기를 살다 간 가슴여린 한 청년과도 같다. 첫 키스에 마음이 달뜨기보다 손 한번 잡는 것에 더욱 더 가슴 설레는 순정.

그 아날로그적 감성은 월-E를 모험의 세계 속으로 몰아넣고, 우주를 떠도는 인류의 운명까지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어두운 밤 하늘 홀로 빛을 뿜는 작은 별처럼 월-E의 러브스토리와 모험담은 아기자기하면서도 또렷한 잔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강박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메시지 전달에 집착하는 픽사의 전통은 <월-e> 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토이 스토리> 와 <벅스 라이프> 가 우정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니모를 찾아서> 가 뜨거운 부정(父情)을 스크린에 돋을새김했다면 <월-e> 는 사랑에 대한 예찬, 지구환경 문제, 감정을 숙성시키는 고독, 세상을 바꾸는 인간의 자유의지 등 다양한 메시지를 한아름에 품는다.

기계에만 의존해 홀로서기조차 버거운 모습으로 인류의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의 한 단면을 내다보기도 하고, 기독교의 창세기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기도 한다.

요컨대 나이와 무관하게 누구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임에도 <월-e> 는 로봇의 앙증맞은 동작과 짜릿한 모험담에 ‘무조건 반응’할 코흘리개보다, 세상만사를 한번쯤 되짚어 보는 어른들에게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그래서 아쉬움은 남는다. 삶과 세상에 대한 자의식의 과도한 짐을 조금만 내려놓았더라면 상영시간 98분이 좀 더 짧게 느껴졌을 텐데. 6일 개봉.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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