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세계철학대회가 7월 30일 서울에서 개막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유럽 북미가 아닌 지역에서 개최되는 첫 번째 대회라서 더욱 의미가 깊다. 세계철학대회는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개최된 이래, 1 2차 세계대전 때 10여년씩 중단된 것을 빼고는 3, 4년마다 열리다가 1948년 국제철학연맹이 설립된 뒤 5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이번 서울대회가 22회째다.
철학올림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참가 인원도 대규모다. '오늘의 철학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전체 주제를 걸고, 104개 국에서 2,600여 철학자들이 참여하여 54개 분과에서 487개 소주제로 나누어 5일까지 토론을 벌이게 된다.
처음 구미 벗어나 서울서 개최
현대는 철학의 빈곤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시대다. 과학과 산업이 발달하여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현대인들 중에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교통이 발달하여 지구 곳곳을 이웃동네 드나들 듯 하게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있는 온갖 진귀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고품질의 옷을 입고 호화로운 저택에서 화려하게 살아가고 있다. 또 온갖 상품들이 즐비해 옛날처럼 일일이 장만하지 않더라도 간단히 손에 넣을 수 있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인들의 이러한 화려한 삶 속에 황폐해진 영혼들의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데 있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경쟁에 몰두하느라 마음이 각박해지고 말았다. 옛날의 우리 선인들은 길을 가다가 남에 집에 들러 하룻밤 묵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 사람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현대인들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고독하고 초라하다. 현대인들은 경쟁에 시달려서 늘 긴장하고 늘 피곤하다. 현대인들은 생로병사의 숙명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래서 허무주의가 난무하고 퇴폐적인 쾌락주의가 만연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본다면 현대인들의 정신적 삶은 물질적 삶의 풍요로움과 반비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인들의 삶이 정신적인 측면에서 이처럼 불행해진 근본 이유는 서구 근대에 발생한 서구 철학에서 유래한다. 서구 근대철학은 신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함으로써 신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온갖 횡포를 자행하던 교회로부터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런데 그 신과 인간의 분리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다.
사람은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하늘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외로워지는 법이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 손을 잡고 있던 어린아이가 사람이 많은 시장에서 어머니의 손을 놓아버린 것과 같다. 어머니 손을 놓아버린 아이는 무섭고 외로워 앞이 깜깜할 것이다. 그 놓아버린 어머니를 도로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시급한 일이다.
서구 근대철학은 신과 인간을 분리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외로워진 현대인들의 영혼을 달래지 못한다. 그 때문에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학술회의는, 심하게 말한다면 거의 대부분이 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만이 모여서 그들만이 쓰는 언어로 언어의 유희를 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제 역할 못하는 철학 뉘우쳐야
동양철학도 예외는 아니다. 동양의 철학을 재료로 하면서도 서구 근대철학의 형식과 방법을 취하기 때문에 동양철학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철학은 자신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철학은 본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이 사실을 철저하게 뉘우쳐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세계철학대회는 이러한 뉘우침으로 채워지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ㆍ동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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