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자들을 재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전 정말 한국 여자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10년여 전만 해도 패션 후진국이었던 한국이 지금은 아시아 최고의 패션 강국이 된 것도 다 여성들의 힘이죠.”
2004년 쓴 책 <파리 여자, 서울 여자> 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자랑거리는 여자들”이라고 주장했던 패션 칼럼니스트 심우찬씨가 4년 만에 다시 여자 이야기를 내놓았다. 파리>
이름하여 <청담동 여자들> . 언뜻 <달콤한 나의 도시> 나 <스타일> 같은 ‘칙릿’을 떠올리기 쉬운 제목이지만 청담동의 스타일과 여성, 더 나아가 대한민국 여성을 다양한 관점에서 예리하게 분석한 문화비평서에 가깝다. 스타일> 달콤한> 청담동>
그는 “청담동은 한국 패션의 태동기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곳”이라고 전제한 뒤 “처음엔 그저 잘 아는 것에 대해 쓰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재미와 정보로 가득한 대한민국의 대표 ‘칙릿’을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청담동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느낀 이후 방향이 달라졌어요. 부를 향한 대한민국의 이중적 잣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혜택이자 고갱이를 선보이는 곳이 청담동이기는 하지만, 돈 많은 여자들의 귀족놀음으로 여겨졌던 패션과 스타일을 대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청담동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1990년대 옷 로비 의혹 사건만 봐도 그렇고 청담동에 대한 대중의 오해의 골이 참 깊은 것 같아요. 불투명한 로비가 아닌 앙드레 김 선생님의 본명에만 논점이 맞춰졌으니까요. 하지만 청담동 여성들의 패션 스타일만 해도 무려 5가지로나 나눌 수 있다는 것 알고 계세요?”
그가 지칭하는 청담동 스타일이란 단순히 패션이나 뷰티의 외양적인 것을 넘어선 라이프스타일을 가리킨다. 5가지는 ‘청담동 사모님들’ ‘청담 귀족녀들’ ‘페라가모 헤어밴드걸들’ ‘연예인과 프로펠러들’ ‘관찰자들’. 그 중 청담 귀족녀들은 해외생활 경험이 있어 유행이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며 그 때문에 패션업계의 주목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들을 말한다.
그는 책에서 그들의 합리적인 패션 소비 패턴을 우화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청담동 여성들이 고가의 사치품만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패션계 종사자로 청담동이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곳이며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표본이라 믿었던 그가, 모든 것이 이익과 손해로 계산되는 청담동의 속성을 발견하게 된 것은 한국을 수차례 방문한 영국인 친구 덕분이다.
그 친구가 한국 여성들의 스타일을 자신과는 판이하게 생각하는 게 이상했던 심씨는 어느날 종로 거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주로 강북에서 한국 여자를 봤더군요. 종로를 오가는 여성들의 옷차림과 청담동 여성들의 스타일이 얼마나 다른지 발견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생각하게 됐거든요.”
이 사건 이후 그는 청담동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또 파리 컬렉션관련 업무와 패션 광고 일을 맡아 프랑스에 오래 머문 덕분에 사회의 소수자 시각에서 삶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결국 사람들의 계층과 마인드를 드러내는 게 패션이며 패션 칼럼니스트인 자신은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는 게 심씨의 말이다.
“아저씨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아날로그 사회에서 벗어나 디지털 마인드를 지닌 여성들이 주도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해요. 여성들이 제 글을 읽고 공격적인 페미니즘에서 벗어나 좀 더 영리하게 자신의 권리를 찾아 갔으면 좋겠고요.”
<청담동 여자들> 을 화려한 트렌드 백서가 아닌 객관적인 청담동 관찰기로 꾸미기 위해 그는 지난 1년간 패션계에서 조금 떨어져 지냈다. 그런데 최근 참석했던 오트 쿠튀르 쇼 현장에서 아찔한 긴장감과 눈부신 아름다움을 경험했다고 한다. 청담동>
역시 자신은 패션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칼 라거펠트(샤넬 수석 디자이너)가 말했듯 패션은 물과 빵과 공기처럼 필수 불가결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주죠. 우아하고 멋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말이에요.”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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