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적 환상 담은 멜랑콜리한 무릉도원
이은실(25)은 성적 환상의 세계로 재구성된 동양화로 주목받는 신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006 서울대학교 졸업 미전>에서였다.
다소 몸에서 겉도는 성장을 하고 머리에 잔뜩 웨이브를 넣은 모습이, 마치 '1980년대의 이화여대생'을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범상치 않은 눈빛만은 '시간대를 초월하는 정신세계를 지녔다'고 증언하는 듯했다.
출품작들도, 그린 이의 정신세계가 일반인의 시공간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묵묵히 웅변하고 있었다. 예컨대, <망> 이라는 제목의 수묵채색화는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만든 고요한 산수의 풍광을 제시하는데, 그 곳은 창문 너머의 공간으로 제시돼 정상성의 시공간과 대별된다. 허나, 단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발기한 성기를 늘어뜨린 숫호랑이와 성기에서 피를 흘리는 암사슴. 망>
따라서 처음엔 이 황당한 상황 설정에 정신이 팔려, 노골적으로 성기를 은유하는 바위와 골짜기, 연못, 폭포, 나무 등이 두 마리의 짐승을 위한 미장센 노릇을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기 어렵다. 작품들은 하나 같이 몽롱한 성욕의 세계에서 번져 나오는 습한 공기로 가득했다. (반복적인 채색이 이런 효과를 낳는다.)
때마침 작가는 전시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었다. 꽃다발을 들고 온 남학생의 손엔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지만 작가는, 친구가 당황하는 수준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기계적으로 그림을 설명해 나갔다. "호랑이가 사슴을 겁간했는데, 사슴은 상처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 힘에 이끌려서 호랑이를 몰래 바라보고 있는 거야…."
이은실의 성적 무릉도원은 종종 짐승들 차지다. 우람한 여성의 성기를 지닌 사슴, 거대한 남자의 성기를 지닌 사자 따위는, 모두 인간남녀의 화신이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암시되는 어떤 성적 사건이 우리의 원초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작품이 다루는 황당한 이야기보다 더 기이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작품에서 표현되는 성적 쾌락의 종류다.
작가는 남성기, 여성기, 젖꼭지, 항문, 엉덩이 등의 페티시를 통해, 고통의 영역에 중첩되는 성적 쾌락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이 초지일관 여성적이다. 흥미롭게도 이은실의 그림에선 기승전결이 분명한 남성적 오르가슴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의 우울한 무릉도원에선, 남성의 쾌락도 여성의 클리토리스 중심적 오르가슴처럼 파도 치듯 반복되고 중첩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그림 속의 남성기는 크게 과장된 모습인 경우라 해도, 마치 클리토리스의 확장 형태처럼 독해된다. 대표적인 예가 작품 <사정지통> 이다. 사정지통>
숫사자는 사정한 뒤의 쾌락, 즉 자신의 '포스트-오르가즈믹 칠'(여성이 오르가슴 뒤에 겪는 가벼운 오한과 멜랑콜리한 감정)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묘사됐는데, 이 세상에 그런 수컷이 있던가?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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