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모처럼 정치력을 발휘했다. 독도 영유권 표기를 신속하게 원상회복토록 ‘지시’함으로써 하마터면 기약도 없이 꼬일 뻔했던 한미관계를 있던 자리로 돌려놓았다. 손님으로 방한해야 하는 처지여서 다급하기도 했겠지만 부시 대통령의 개입으로 일이 풀려나간 모양새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이번 경우만 보자면 인기가 바닥인 데다 임기 말까지 겹쳐 미국 내에서 거의 찬밥 신세인 그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내도 큰 흠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대통령 연출력 보인 부시
부시 대통령은 이번에 자신이 한 행동의 대외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연출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독도 영유권 표기를 ‘분규 이전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결정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제임스 제프리 안보부보좌관을 통해 이태식 주미대사에게 직접 알렸다. 주무 부처인 미 국무부와 주미대사관 사이에 통보가 이뤄졌어도 무방했겠지만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 참모를 시켜 ‘미 대통령의 조치’임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그만한 저의가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밉게만 여길 일도 아닐 것이다.
지난 주에는 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태도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 방문을 앞두고 KBS와의 회견에서 “일부에선 내가 단지 일을 진전시키는 것을 바란다고 말하지만 나는 결과를 갖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북핵 협상을 유일한 외교적 업적으로 포장하려다 보니 ‘벼랑 끝 전술’에 능한 북한에 끌려 다니기만 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이었다.
두고 보면 차차 확인될 일이지만 부시 대통령이 진정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다면 그 자세는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고무적이다. 북핵 문제는 조바심을 낸다고 해결될 리도 없거니와 임기를 6개월밖에 남겨두지 않은 부시 대통령이 욕심을 낸다고 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임기 중 성과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북핵 해결의 탄탄한 토대를 만들어 차기 정부에 넘겨주는 데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미측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북핵 6자회담 당사국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검증체계 마련에 ‘연계’할 방침을 밝히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방한에 앞서 또 다른 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내 친구(my friend)’라고 부르며 이번 방한이 “친구를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국 여성 골퍼들의 활약상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라는 표현을 써가며 극찬하기도 했다.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어서 다소 식상하기는 하지만 이 대통령을 친구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 한국 국민에 대한 예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고마운 일이다.
따놓은 점수 잃지 말기를
그러나 한국에 대한 친근감 표시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는 그의 방한을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독도 영유권 표기 원상회복 조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른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원상회복 결정을 한국에 준 ‘선물’로 치부하고 있다면 이러한 한국의 모습에 섭섭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원상회복은 미국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사후에 그럴듯하게 시정한 것일 뿐 선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우리에겐 너무나 분명하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이 다른 생각을 한다면 그나마 따놓은 점수를 잃게 될 것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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