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도 민법이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보장한 각종 권리 능력을 갖고 있을까. 이 같은 궁금증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태아에게는 권리 능력이 없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31일 A씨 부부가 “출생 전 숨진 태아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민법 제3조는 ‘사람은 생존한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제762조는 ‘태아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에 따르면 A씨는 2002년 7월 기형아 검사를 받기 위해 양수를 채취했다가 합병증으로 태아가 숨지자 산부인과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 원고에는 부부와 두 자녀, 그리고 숨진 태아까지 포함됐다.
그러나 법원은 “제762조는 태아가 출생한 경우 태아 시절의 사건에 대해 소급해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숨진 태아에 대한 배상 및 위자료를 인정하지 않았고, A씨 부부는 “태아의 존재가치를 평가절하하고 국가가 생명권 보호의무를 어긴 것”이라며 2004년 10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날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법원의 손을 들어줬다. 헌재는 “출생 전 태아의 손배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태아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며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출생 이전의 어느 시점부터 형성되지만, 법적으로는 출생 시점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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