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휴가를 갔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모두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한가하게 휴가를 가는 게 바람직한 건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토로했다고 한다. 재충전이 필요하고 대통령이 휴가를 가지 않으면 청와대 직원들은 물론 정부 부처 공무원들도 부담을 느낀다는 참모진의 건의를 받아들여 결국 휴가를 줄여 길을 나섰다는 전언이다.
전국이 이미 휴가철로 접어든 마당에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싶겠지만, 대통령이 휴가를 떠난 것은 잘한 일이다. 하도 칭찬 받을 일이 없다 보니 휴가간 걸 잘했다고 해야 하는 착잡한 심정이지만, 이 대통령에게는 휴가가 필요했다. 나랏일은 휴가가 없다지만, 대통령에게는 휴가가 필요하다.
금강산 사건, 독도 영유권 문제, 호우피해 등 각종 현안들이 쌓여 있어도, 재충전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은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필수품이자 경쟁력이다. 충분한 휴식과 자기성찰의 시간이 그래서 필요하다.
항상 외롭고 어려운 자리
대통령은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과거에 비하면 가치가 많이 떨어졌지만, 그 누구도 감히 꿈꿀 수 없는 막중한 지존의 직이다. 밀짚모자를 쓰고 농부들과 막걸리를 마시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은 그 역설적인 상징일 뿐이다. 대통령의 의전이나 문장, 복식 등이 과거 군주의 그것을 닮은 것도, 간혹 갑갑해 하기도 하고 또 평민주의자들로부터 힐난을 받기도 했지만, 대통령이라는 공직의 중요성 때문에 국민정서 상 그런대로 양해되고 있다.
대통령의 언행, 일거수일투족이 항상 품위를 잃지 않아야 하고 국민의 자부심과 공동체적 통합을 위해서라도 영예로운 것이 되어야 함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대통령직은 얼마나 힘든 자리인가. 대한민국의 운명과 성쇠를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하는데 항상 민의에 귀 기울여야 하고 항상 고도의 긴장 속에 지내지만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으니 얼마나 고되고 외로운 자리인가. 그런 뜻에서 휴가를 줄일 만한 사정이 있었을 테지만, 앞으로는 충분한 휴식이 가능하도록 휴가 기간이나 횟수를 더 늘리는 게 바람직하다.
푹 쉬고 숨을 돌리면서, 대통령이 초장부터 겪어야 했던 촛불수난으로, 남북관계와 한일관계의 변괴로 자칫 잃을 뻔 했던 판단력과 집중을 되찾기 바란다. 아무리 깎아 내려도, 못마땅해도, 국민이 그를 선거를 통해 선출했고 임기동안 나라를 이끌어 나갈 책무를 부여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 아닌가.
대통령이 휴가를 갔으면 갔지, 그 동안 정신을 가다듬으라거나 제대로 정국 구상을 하라는 등 특별한 주문은 없다. 휴가동안 누구를 만날지, 무슨 책을 읽을지도 따지지 말자. 그저 잠시 이 대통령을 잊어주면 안 될까. 안 그래도 모처럼 떠난 휴가조차 편치 않을 것이다. 어느 하나 속 시원히 제대로 해결되는 일이 없고 가는 길마다 난관이니 번뇌는 끝이 없다. 대통령의 휴가에 특별한 바람은 없다. 단지 푹 쉬고 돌아온 뒤에는 제대로 국정을 이끌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휴가기간에 대통령이 혹 나름대로 멋과 여유를 추스르면 더 좋을 것이다.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대통령이 시국의 중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음을 국민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더라도, 무언가 머릿속에, 마음에 밝은 희망과 즐거움의 인자가 살아 있어야 한다. 휴가가 끝나더라도 일 보따리를 직접 들고 돌아오지는 말았으면 한다.
쉬엄쉬엄 호흡 조절하며
어렵사리 훌륭한 인재를 불러 모았다면 그들이 자신의 일을 하도록 놔두면 뭐가 어떤가. 참모들이, 장관들이 그토록 뼈에 사무치게 들어야 했던 소통의 단절 문제를 직접 해결하도록 충분히 시간을 두고 기다려 주면 안 되겠는가. 의회정치가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여의도를 존중하고 마뜩치 않아 보이는 언론과 야당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짧은 휴가 길이어서 벌써 돌아올 날이 가깝다. 아무쪼록 이번 휴가만 아니라 앞으로도 대통령이 사업하듯, 납기를 맞추듯 노심초사하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쉬엄쉬엄 호흡을 조절하면서 국정을 이끌어 주기 바란다. 건투를 빈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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