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한국령이 아닌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하기까지 우리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를 되짚어보면 “눈뜨고 당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다. 특히 일선 외교현장에서 미측의 움직임을 사전에 면밀히 파악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했어야 할 주미 한국대사관의 경우는 변명의 여지를 찾기 어렵다. 영유권 관련 독도 지위 변경은 명칭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주미 대사관은 미 지명위원회의 변경 기도를 사전에 포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하고 소극적인 태도로 임하다가 미측으로부터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15일 미 의회도서관이 독도 주제어를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로 바꾸려다 유보한 사건은 이마저 알지 못하고 있던 주미 대사관에 중요하고도 충분한 ‘경보’가 됐어야 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명칭이나 표기, 영유권 부분에 이르기까지 독도 문제의 민감성을 감안하면 미 지명위는 외교부 본부의 훈령이 있든 없든, 주미대사관이 미 의회사건 이후 동향을 점검했어야 할 제1순위 대상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지명위의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조사와 함께 실무 담당자와 전화라도 한번 했더라면 최소한 사후에라도 미측이 우리를‘무시하거나 속이려 했다’는 항의의 근거를 만들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알려진 대로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미측의 움직임을 경고하는 제보가 전달됐는데도 이를 주미 대사관측이‘제보가 영유권 문제와 관련된 것이라는 구체성이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뒤늦은 책임회피에 불과하다.
평소 독도처럼 폭발성이 있는 문제와 관련해 주미 대사관이 미 국무부 또는 백악관 등과 어떤 정무적 채널을 구축,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도 따져봐야 할 대목이 많다. 미 지명위는 주미대사관측에 독도 지위 변경을‘단순한 데이터베이스 정리 차원’이라고 변명했다지만 한 국가의 영토주권에 관한 문제를 이렇게 무신경하게 처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래서 미 지명위가 한일 사이에 영유권 분쟁이 다시 격화하자 미 국무부 등에 정무적 판단을 구한 뒤 부처간 묵인 또는 교감 속에서 독도 지위 변경이 이뤄진 것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최근 미국산 쇠고기 사태 때문에 우리 외교가 수세에 몰려 있다고는 하지만 한미간 신뢰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주미 대사관은 대미 창구 역할뿐 아니라 미국에 나와 있는 타국 대사관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어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임무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 내 일본측의 동향을 전혀 간파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의 미 하원 통과 때 주미 일본대사관이 막대한 돈을 쓰면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작전을 벌였던 점을 감안하면 미 지명위의 독도 지위 변경에 일본측 로비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변경 자체가 일본편을 드는 것이라는 점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황에서 1977년에 이미 바뀐 명칭에 따라 왜 하필 지금 데이터베이스를 정리하는지를 주미대사관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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