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25일 오후, 택시에 올라 "기상청에 가자"고 했다. 기사는 대뜸 "날씨 하나 못 맞히는 기상청엔 뭐 하러 가느냐"며 불만을 쏟아냈다. "하도 못 맞히니까 (환경) 장관이 외국 전문가 영입하랬더니 반발을 했다네요. 쳇, 그러면 잘 하든지…."
정순갑 기상청장을 만난 자리에서 그 얘기를 전하자 "국민들께 참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할 말이 많았다.
"국민들께서 '기상청이 밥값은 한다'고 믿어주실 때까지 되도록 슈퍼컴 타령, 인력 타령, 예산 타령은 안하겠다"는 각오도 비쳤다. 장맛비는 물러갔지만 좀처럼 짙은 먹구름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상청의 속사정과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나름의 대책을 들어보고 실현 가능성 등을 따져봤다.
- 최근 4주 연속 주말예보가 어긋나(이튿날인 26일 예보도 결국 빗나가 5주 연속이 됐다) '오보청' '구라청'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기상예보와 관련한 자연적 변화, 사회적 변화 모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결과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과학적으로 대처한다고 했지만 장ㆍ단기 예보 등 실제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했다.
반성한다. 주5일제 근무 확대에 따라, 재해예방 등 '안전' 관련 예보뿐 아니라 여가생활과 관련된 '웰빙' 예보에도 적극 대응했어야 하는데 준비가 늦었다."
- 기상청 안에서는 '4주 연속 오보'라는 지적을 수긍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죄송스럽지만 현재 우리 평가방식은 시간 단위가 아니라 하루 단위이고, 강수 유무만 따지지 강수 시점이나 강수량은 평가하지 않는다. 가령 '○○지역에 한때 비'라고 예보한 뒤 이 지역 어디에 오전이든 오후든 비가 왔다면 맞았다고 보는 거다. 이 기준으로는 서울의 경우 4주 중 한 주만 틀린 셈이다. 이런 평가방식 빨리 고쳤어야 한다.
옛날에는 농어민 외에 도시인들은 날씨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눈 온다고 하더니 왔네' 식으로 관대하게 봐줬지만 요즘은 다르지 않나. 자체 평가한 예보정확도 85%와 국민의 체감만족도 66점, 이 괴리가 결국 문제가 된 것이다. 기상청으로서는 이번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한다."
- 특히 여름철 들어 주말 예보가 번번히 어긋나는 이유는.
"원래 여름에 악(惡)기상이 많지 않나. 봄, 가을에는 나쁜 날씨가 적어 예보 정확도가 높고 겨울에도 눈 오는 날이 여름철 비 오는 날보다는 적어 전통적으로 여름철의 예보 정확도가 낮다.
게다가 겨울에 '3한4온'이 있는 것처럼 날씨에는 1주일 단위 사이클이 많다. 애매한 날씨가 화요일, 수요일에 걸리면 좀 덜 할 텐데, 토요일에 걸리면서 문제가 커졌다.
예보관들 돌아가며 근무하는데 현재 평가방식으로는 운 좋게 날씨 좋은 날 걸리면 평가 1등이고, 나쁜 날 계속 걸리면 꼴등 할 수밖에 없다. 10월부터 지역을 쪼개 3시간 단위로 예보 하는 '동네예보제'를 시행하고 평가방식도 그에 맞게 고치면 계절적 요소 많이 적어질 것이다."
- 몇 시간 앞도 예측 못하는 기상청이 '동네예보'를 할 역량이 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제가 예보국장을 하던 2005년부터 5㎞ 마다 격자를 만들고 3시간 단위로 예보하는 동네예보 틀을 만들어 2년 반 넘게 시험 운영해왔다. 기법은 많이 발달해있다. 물론 시행 즉시 예보 정확도가 확 올라간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집 주변에 3시간 단위로 예보가 나오면 국민들 관심이 그만큼 높아지고 피드백이 활발해져 지역 예보관들이 보다 정확한 예보를 내는데 자극제가 될 것이다. 8월 4일 동네예보를 모니터링 해 줄 옴부즈맨 발대식을 갖는데, 이미 3,000여명이 가입할 만큼 관심이 높다."
- 당면 과제는 전문인력의 질을 높이는 등 내부적으로 예보 능력을 키우는 것 아닌가. 옴부즈맨은 취지는 좋지만, 자칫 국민 대상으로 '쇼'를 한다고 비칠 수도 있다.
"옴부즈맨 관리가 또 다른 일이 돼 내부적으로도 불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네예보를 바탕으로 국민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예보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면 누가 유능하고 누가 무능한 지 가려질 것이다. 유능한 지역예보관에게 성과급도 많이 주고 진급도 빨리 시켜줄 것이다.
기상청 직원 1,281명 가운데 관측과 예보 업무 담당이 400명 가량이나 되는데, 현재 시스템 상 최종 예보는 본청의 예보상황과장 5명 손에서 결정 난다. 인력낭비 아닌가. 대기과학 전공한 똘망똘망 한 젊은 인력을 지역 전문가로 키워야 한다."
- 예보 능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면 인력 외에도 부족한 점이 많을 텐데.
"수치예보모델을 빨리 바꿔야 한다. 슈퍼컴은 최선진국 수준인데 수치예보모델이 문제다. 17년 전 일본 모델을 수차례 개조해서 쓰고 있지만 아무리 고쳐도 결국 제약이 있다. 기상예보능력에서 세계 2위인 영국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다.
해양 관측 장비도 크게 부족하다. 장비 욕심을 내자면 배도 갖고 싶고, 비행기도 갖고 싶다. 하지만 이건 중장기 계획으로 차근차근 해결해 가야 할 과제다. 당장은 국민의 신뢰 회복이 급하다.
현재 한해 기상청 예산이 2,000억원이니 국민 1인당 10원 꼴인데, 10배, 20배, 400배의 가치를 창출해 국민들이 점심에 먹는 4,000원짜리 냉면 한 그릇 가치는 된다고 인정해주실 때까지 슈퍼컴 타령, 인력 타령, 예산 타령은 되도록 하지 않겠다.
임기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2년 정도 더 주시면 그 안에 세계 6위인 프랑스 수준의 예보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
- 예보관들은 "말 그대로 예보인데 강수 시점과 강수량까지 100% 맞히라는 게 말이 되냐"고 볼멘소리도 한다. 사기도 많이 떨어져 수장으로서 부담이 클텐데.
"'못 해먹겠다'까지는 아니고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얘기는 나온다. (환경) 장관님과 대립하는 걸로 잘못 비춰져 직원들 모두 맘 고생이 심하다. 한편으로는 '청장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런 응원도 있다.(정 청장은 이 대목에서 울컥 하며 눈물을 보였다.) 직원들이 함께 야근을 많은 하다 보니 한 식구 같은 끈끈함이 있다."
- 이공계 중심의 폐쇄적인 인력 구조에 대한 비판도 있다.
"웰빙 수요에 맞추려면 인문학적 소양도 필요하다. 기술고시 이외 고시 출신들도 영입하려 고 노력했지만 잘 안 오고 오더라도 금세 다른 부서로 간다. 젊고 유능한 인재가 사명감을 갖고 우리 청에 와서 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태기를 바라는 것, 당장은 어려운 것 같다."
- 환경 장관이 기상청의 민영화 문제까지 거론했는데.
"기상청이 생산한 자료를 토대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드는 형태의 민간 영역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는 적극 동의한다. 가령 우리 직원들이 인터넷 기상방송(www.weather.co.kr)을 하고 있는데 이걸 민간 영역에서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상청의 기본 업무에 대해 자원을 투자해 대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간 사업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상서비스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국민들도 무료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환경장관과 갈등설은? "외국 전문가 불렀지만 올 사람 없더라"
정순갑 기상청장은 이만의 환경부 장관과의 갈등설로 도마에 올랐다. 이 장관이 22일 기자간담회에서 "기상예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해외 전문가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이후, 정 청장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동남풍을 부른 제갈공명'의 예를 들며 "지역 예보관들이 가장 잘 예보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 '항명' 논란까지 불렀다.
그는 "외국 전문가 영입은 예보 발전계획의 하나로 장관과 협의한 사안"이라며 갈등설을 부인했다. 정 청장이 밝힌 경위는 이렇다. "대통령께서 임명장을 주면서 '예보가 자꾸 틀린다'고 걱정했다.
보훈처나 환경미화원 방문 등 여러 자리에서 날씨예보 얘기를 했다. 이 후 여러 상위기관에서 (예보 능력을 향상시킬)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이 장관은 특히 외국인 예보관 영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미국 영국 일본 기상담당 기관과 학회에 요청했지만 일본에서는 '갈 사람이 없다'고 통보해왔고 다른 곳에서는 응답이 없었다." '제갈공명' 비유는 동네예보를 추진하면서 예전부터 언급해온 건데, '항명'으로 비쳐져 당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청장은 "유능한 외국 전문가를 초빙하고 싶어도 급여 등 걸림돌이 너무 많다"며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돈도 돈이지만 외국인을 공무원으로 임명하는데 행정상 제약도 많다.
그래서 정식 임용이 아니라 서, 너 달 정도 초빙해 예보관 평가 등 R&D 프로젝트를 맡기는 방안을 알아봤는데, 그 역시 보수 문제가 걸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외국 전문가 영입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제약도 많고 오겠다는 사람도 없어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 청장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기상청장이라는 자리가 순수 사이언티스트와도 다르고 직원들 사기만 챙겨서도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걸 배웠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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