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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MB 정권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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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MB 정권의 트라우마

입력
2008.07.2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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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위원의 매력과 마법에 유럽이 흠뻑 빠지고, 독일 프랑스 영국 정상들이 앞 다퉈 그를 영접하는 데 열을 올렸다는 뉴스가 지난 주 외신의 머리를 장식했다. 특히 독일 베를린 중심부 공원의 승전탑 앞에서 가진 행사에는 20만명의 인파가 운집해, 40여년 전의 존 F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그의 면모와 연설에 열광했다.

하이라이트는 ‘미국 시민이자 세계 시민’ 자격으로 연단에 오른 오바마가 국가ㆍ인종ㆍ종교 등의 장벽을 뛰어넘는 화합과 테러ㆍ기후변화ㆍ빈곤 등의 지구적 도전에 맞서는 용기를 강조하며, 바로 지금이 지구시민 모두가 책임감을 발휘할 때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아직은 대통령 후보일 뿐인 오바마의 순방에 대해 유럽이 록 콘서트 같은 축제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염증과 새로운 세계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함께 빚어낸 결과일 게다. 오바마는 이 점을 정확히 짚었고, 유럽인들이 그리는 지도자상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창출해냈다. 비판론자들은 그의 분명하지 않은 정책과 저급한 포퓰리즘으로 한 판의 정치쇼를 벌였다고 공격하나, 세계를 향해 던진 화합ㆍ희생ㆍ용기ㆍ책임의 메시지는 이미 ‘케네디 향수’를 뛰어넘고 있다.

오바마가 세기적 도전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며 영국에서 유럽방문 일정을 끝냈을 즈음에, 이명박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의 리더십을 다시 떠올렸을 듯 싶다. 휴가 직전 청와대 직원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의 연설로 유명한 처칠의 일대기를 그린 책을 선물하며, “다들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실수는 해도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함께 전했다고 해서다. 이런 각오를 다지는 듯, 최근 대통령의 말수가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각종 개혁과제를 차질 없이 이뤄내겠다는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하지만 메시지의 힘과 효과에서 이 대통령은 실수가 아니라 실패하고 있다. 머리의 메시지와 입의 메시지가 다르고, 혼란스런 메시지를 실천할 손과 발마저 따로 놀기 때문이다. 결과는 ‘쇠고기 트라우마(trauma)’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공직사회의 무기력과 눈치보기이고, 당정 사이에 일상화한 정책의 혼선과 갈등이다. 관료들은 국민보다 괴담이 무서워 몸을 사리고, 기업은 널뛰듯 하는 정책방향을 가늠하지 못해 움츠리며, 가계는 내일의 삶을 기약할 수 없어 바닥을 긴다.

무엇보다 딱한 것은 이 대통령이 정책의 일관성과 계속성을 내세워 경제팀을 유임시키는 무리수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오히려 커지고 있는 점이다.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고 던져야 할 때 던지지 못한 바둑의 짜증스런 행마처럼, 경제사령탑이 권위와 신뢰를 잃고 모멸에 가까운 추궁을 받는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 없다. 4대 원칙 운운하며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야수의 무리에게 던져진 먹이처럼 된 공공기관 개혁방안은 단적인 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메시지는 여전히 모호하고 이중적이다. 엊그제 그는 공무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난 몇 달간 우리의 신뢰자산이 얼마나 취약한지 충분히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타개할 비전과 전략을 담은 메시지를 내놓지 못한다. 경제든 외교든 안보든 일만 터지면 헛발질이고 안팎의 망신을 산다. 이 대통령과 주변의 인적 진용의 한계와 부실을 자인한 셈이다.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대한민국의 지도를 세계로 넓히겠습니다.…선대의 기원이고 당대의 희망이며 후대와의 약속입니다.…> 이 대통령의 취임사 한 대목이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낸 말일 것이다.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했다. 대통령의 언약을 못 믿는 지금, 국민은 정말 두렵다.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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