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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30> '제2의 최은희'로 1970년대 주목 받았던 여배우 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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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하명중의 나는 지금도 꿈을 꾼다] <30> '제2의 최은희'로 1970년대 주목 받았던 여배우 방희

입력
2008.07.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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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테이블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가장 재미있게 본 한국영화라고 하여 갑자기 유명해졌던 영화가 있다. 제목이 <2박 3일>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 수행했던 누구도 들어보지도 못한 영화제목에 어리둥절하여 한국으로 급히 타전하는 해프닝이 있었다고 한다.

<2박 3일>은 1974년 연방영화사가 제작하고 이상언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어느 회사원이 2박 3일 지방출장을 갔다가 한 여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는 다소 통속적인 드라마다. 영화마니아인 김위원장이 왜 이 영화를 이야기했을까?

김위원장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화광이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필름이 무려 5만 편이나 되고 저술한 영화서적도 수십 편에 이른다고 한다. 김정일은 여배우 최은희씨의 열렬한 팬이었다.

최은희씨가 남편 신상옥 감독과 헤어진 후 홍콩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자 바로 북한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국내에서 사업에 실패하고 세계를 떠돌아다니던 신 감독을 북으로 오게 하여 최은희씨와 다시 가정을 이루고 영화를 마음껏 만들게 해 주었다.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태도로 미루어, 그의 머리 속에 <2박 3일>은 아마도 그 영화 주인공이었던 ‘방희’라는 여배우로 각인되었지 않았을까 싶은 게 내 생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은희와 방희 사이엔 아주 큰 유사점이 있다. 영화에 비친 두 배우는 지고지순에 외유내강인 한국의 전형적 여성상이다. 그런데 차이점도 있다. 방희에게는 60년대 어머니와 다른 ‘육감적인 면’이 있었다. 김정일은 그 변화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어냈을 것이다.

여배우 ‘방희’는 1970년대 영화계에서 한동안 주목을 받았던 배우다. 남정임을 데뷔시켜 대 스타로 키운 연방영화사가 1974년, 1000:1의 경쟁에서 두 신인 여배우를 선발하였다. ‘방희’와 ‘유지인’이다. 나는 2년간 연방영화사와 12편의 영화에 출연 계약하였던 터라 두 배우와 필수적으로 공연하게 되어 있었다.

방희는 <호기심> <2박 3일>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로, 유지인은 <환녀> <나상> 으로. 유지인은 성격이 쾌활하고 스태프들과 잘 어울린 반면 방희는 지방출신으로 서울생활에 익숙하지 않아서였을까 늘 구석진 곳에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데뷔작 <호기심> 에서는 감독의 전라 요구에도 과감히 응하였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그녀의 ‘샷’을 찍을 때면 파인더에서 눈을 떼지 못 했다.

여배우 중 가장 아름다운 얼굴 윤곽과 각선미를 가졌다며 감독의 ‘컷’ 소리도 잊은 채 카메라 스위치를 잠그지 못할 정도였다. 첫 작품에서 보여준 그녀의 매력에 관객들이 완전히 사로잡혔다.

그녀의 두 번째 영화<2박 3일>. 촬영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오전 8시 집합 시간에서 2시간이 지났다. 평소 같으면 30분전에 현장에 먼저 나와 있을 그녀가 오지 않았다. 전화도 불통이었다. 감독과 제작부가 발을 동동 굴렀다. 12시가 되서야 나타났다. 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 쥔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

감독과 제작부장이 고함을 쳤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흐느끼기만 하였다. 다른 촬영현장으로 떠나려고 차에 시동을 걸고 있던 내가 급히 그녀를 차에 태웠다. 그녀가 울먹이며 늦게 된 사연을 말했다.

<2박 3일>은 비교적 대사가 많은 영화였다. 신인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분량이었다. 그녀는 ‘NG’를 내지 않기 위해 며칠 밤을 새웠다. 마침내 불면증에 걸려 촬영 전 날 밤 수면제를 먹었고 눈을 떠보니 얼굴이 풍선같이 부어올라 눈도 뜨지 못 할 정도가 된 것이다.

그녀는 부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쓰다가 도저히 되지 않자 야단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소문이 전해지자 촬영장마다 그녀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물론 그녀의 두 번째 영화도 성공하였다.

그리고 최은희의 대표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의 리메이크 작품이 그녀의 새 작품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역을 1960년대의 최은희와 전혀 다른 색깔로 소화해냈다. ‘새로운 최은희’가 탄생한 것이다.

촬영지는 전라남도 순천. 약 1개월 간 올 로케이션이었다. 우리는 한 여관에 투숙하였다. 리메이크 작업은 창작하는 이들에게는 매력적인 일이 아니다. 작은 도시, 똑같은 일정, 스태프들의 짜증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두 팔을 걷어부쳤다. 시장에서 갓을 잔뜩 사와 김치를 담그더니 전 연기자와 스태프 밥상위에 ‘갓김치’를 올렸다. 전주가 고향인 방희의 음식 솜씨가 쭉- 튀어나온 스태프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남원 춘향’의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마음씨로 -새로운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제 2?최은희로 각광을 받을 수 있던 그녀가 어느 날 자취를 감췄다. 스타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어느 분야도 그러하듯 이곳에도 숱한 장애물이 있다. 그녀가 그것을 극복하지 못 했는지 아니면 스스로 거부하였는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영화계에 없다. 김정일이 영화 <2박 3일>을 이야기했던 이유는 젊었을 때의 최은희의 잔영을 갖고 있던 그 배우 방희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녀와 오래간만에 전화통화를 하였다. 방희는 영화계를 떠나 남편 임승종 성악가와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게 해 주세요’ 라고 하던 기도가 ‘모두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로 바뀌었어요”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탈출한 신상옥 감독 말이 기억난다.

“김정일은 인민한텐 ‘나쁜 놈’이었지만, 영화에 관한 한 ‘좋은 놈’이었거덩.”

작금의 한국은 어떤가? 군사정권은 여배우들을 권력자의 노리개로 삼았고. 민간정권은 영화감독과 배우들을 권력의 앞잡이로 세우고 서로 거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세태를 신감독은 어떻게 일갈하실까?

“이상한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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