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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칠진>과 <가짜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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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칠진>과 <가짜잡지>

입력
2008.07.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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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로 등단하고, 천편일률적인 흑백 저자 사진을 찍은 뒤, 유수의 출판사에서 작품을 출간하기’를 희망하는 젊은 문학도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구태의 방식으로 작가연하려는 희망은 비리하기 짝이 없다.

인상적인 역사의 한 장면을 들춰보자. 1970년대 중반 뉴욕에서 소위 ‘다운타운 문학계’가 태동됐다. 이스트 빌리지를 중심으로 시인, 소설가, 미술가, 펑크 록커 등이 한데 뒤섞여,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창출했다.

십여 년 동안 소형출판사, 독립뉴스, 복사기/팩스 잡지, 저가 월간지 등이 백화만방했다. 지금 다시 보면, 일탈하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일탈을 야기하는 형식 자체가 매력적이다.

예컨대, 조엘 로즈와 캐서린 텍시어의 라는 잡지는 1983년에 창간돼 1990년에 폐간됐는데, 모든 잡지가 집에서 도트-매트릭스 프린터를 이용해 출력됐고, 지퍼락 백에 담겨 4~5달러 정도에 판매됐다. (불법적인 텍스트를 담고 있다는 뜻에서, 소매용 마약의 비닐 포장 형식을 차용했던 것이다.)

캐시 액커, 브루스 밴더슨, 데니스 쿠퍼, 린 틸먼 등 하드코어 성향의 문학가들이 주요 필진이었고, 키키 스미스, 아트 스피글먼, 데이비드 보이나로비치 등의 미술가들이 지면을 꾸몄다. 가내수공업형 수제잡지인 터라, 같은 호라고 해도 종종 표지는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국내에도 야릇한 형태의 잡지가 없지 않다. 문학도의 참여는 저조하지만. 눈에 띄는 하나는 홍익대 회화과 출신의 3인-허지현(26), 윤재원(24), 이영림(25)이, “언더그라운드 예술·문화 잡지”를 표방하며 창간한 <칠진> (www.chillzine.com)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출신의 홍은주(23)가, “뭐든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우선 다 모아놓고 잡지라고 우기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며 창간한 <가짜잡지> (www.keruluke.com/gazzazapzi/n02.html)다.

‘홍대 앞’의 키치적 향취를 물씬 풍기는 <칠진> 은 지금까지 5번 발행됐는데, “양가집 자제가 언더그라운드에서 쿨한 척 폼 잡는 느낌”이 매력이자 약점이다.

이영림은 “최정화 세대의 키치가 자신들의 성장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면, <칠진> 의 키치는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호기심에 탐험하며 유희하는 것이 미묘한 차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이제 2호를 발간한 <가짜잡지> 는 특정 잡지의 레이아웃을 차용하며 꾸밈없는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는 것이 강점인데, 소위 “88만원 세대” 특유의 우울한 정서는 다소 고약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디지털 출력 시스템을 갖춘 제본소를 통해 10권 단위로 ‘선주문-후제작’되는 잡지라는 점이 독특하다.

자, 한국의 문학청년들이 대안적 형식의 잡지 하나 창간한 적이 없어서야 어디 체면이 서겠는가. 분발을 요청한다.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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