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룡 / 창비
용인 고시원에서 불이 나 7명이 죽었다. ‘고시원’만큼 한국사회의 서글픈 현실이 숨어있는 말이 또 있을까. 찾아보니 이 말의 뜻은 사전에도(국어사전에도 백과사전에도 위키백과 한국어판에도) 안 나온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수많은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고시 합격이 아니라 오직 생존을 위해 그곳에 거주하는 소외계층과 약자들, 그리고 고시 합격 같은 성공을 꿈꾸며 이 땅에 온 외국인노동자들. 벌집 혹은 쪽방이 고시원의 실상이다. 호칭과 존재의 이 끔찍한 괴리라니. 한 시인은 그곳을 ‘선원(禪院)’이라 부른다.
‘이 선원의 선승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혼자이지요/ 홀로 존귀한 최고의 선승들입니다/ 108개의 선방에는 선승이 꼭 한명씩만 들어갈 수 있어요/ 여느 선방과 달리 방 안에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잠을 자든 공부를 하든 밥을 먹든 자위행위를 하든/…/ 공양간에 함께 모인 선승들은 말이 없습니다/ 말은커녕 입도 벌리지 않고/ 그들은 밥을 몸속으로 밀어넣습니다/ 다년간 수행한 덕분이지요/…/ 뱃속으로 고요의 강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이르면/ 가끔 화장실에 갑니다 화장실은 늘 만원입니다/ 괜찮습니다 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법이니/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불이 나도 괜찮아요/ 13호실에 비상용 사다리가 있지만/ 서로 간섭하지 않는 미덕이 습관이 되어/ 나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일에는 끼어들지 않습니다/ 괜찮아요 불이 나도 어차피 열반에 들면/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요’
시인 차창룡(42)이 올해 4월에 낸 시집 <고시원은 괜찮아요> 의 표제 시다. 차창룡이 쓴 고시원은 가감없는 현실이자, 그 현실에 대한 지독한 풍자와 비판이다. 고시원은>
고시원은 한국사회 그 자체다. 체제의 약자들은 ‘참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수행법’임을 ‘다년간 수행’으로 알고 살아간다.
불이 나서 죽는다 해도, 누구에게도 방해되지 않는 삶을. 며칠 지나면 그 소식은 또 까맣게 잊혀지고, 비정한 고시원은 “다 괜찮다”며 굴러갈 것이다. 과연 괜찮은가.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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