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의 도살자' 라도반 카라지치를 세르비아 정부에 넘긴 이는 다름 아닌 카라지치의 오른팔인 라트코 믈라디치 전 세르비아계 군 사령관이었다.
영국의 일간 텔레그라프는 23일 독일 대외 정보를 관장하는 연방정보국(BND)과 가까운 독일 정보기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믈라디치가 몇 개월 전 자신을 추적하는 이들과 협상에 나섰으며, 자신의 구명을 위해 카라지치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또 "믈라디치가 보스를 배신한 것은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서의 재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당초 세르비아 정부는 믈라디치의 은신처를 찾던 중 카라지치를 잡았다고 밝혀 믈라디치의 체포도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가 믈라디치 대신 카라지치를 체포하고 믈라디치를 보호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르비아 정부가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당장 믈라디치를 내 놓을지는 의문이다.
믈라디치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유엔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무슬림 거주 지역인 스레브레니차를 침공해 8,000여 명에 이르는 무슬림을 무참하게 학살한 당사자로 1995년 ICTY에 의해 카라지치와 함께 전범으로 기소됐다.
당초 정보 당국은 카라지치보다는 믈라디치의 최근 행적을 더 잘 파악하고 있었던 터이어서 믈라디치의 체포가 앞설 것으로 예상되었다. 믈라디치는 카라지치 못지않게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주기적으로 베오그라드 시내에서 식사를 하거나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믈라디치를 잡기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정보기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이 발칸반도를 이 잡듯이 뒤졌다.
믈라디치는 ICTY의 재판을 피하는 대신 세르비아 지방법정에서 재판을 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4년부터 베오그라드에서는 지방 전범재판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 재판은 방탄 유리로 둘러싸인 특별 법정에서 이뤄진다. 텔레그라프는 "믈라디치는 여전히 세르비아에서 전쟁영웅으로 추앙받고 있기 때문에 지방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가 결국 그를 체포할 경우 ICTY에서의 재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세르비아 정부는 선뜻 믈라디치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신유고연방 대통령을 ICTY에 넘긴 조란 진지치 전 세르비아 총리의 악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진지치 전 총리가 2003년 베오그라드에서 밀로셰비치 추종자들에 의해 암살당한 후 세르비아 정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독일정보기관 관리는 카라지치와 믈라디치의 추격에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서방국가의 정보기관이 깊숙이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텔레그라프에 "서방 세계는 발칸 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막고 세르비아를 유럽연합(EU)의 일원으로 흡수하기 위해 정보를 제공한 후 카르지치와 믈라디치의 체포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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