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참 수식어가 많다. ‘런던의 전설’(1992~99년 런던에서 한국주식 영업 최고실적) ‘최고의 국제통’(99년 귀국 이후) ‘증권업계 최연소 CEO’(2007년 47세로 한국투자증권 사장 취임) ‘금융실크로드의 개척자’(올해 취임 1주년 해외성과) 등이다. 숨이 턱 막힐 정도다. 빈틈이라곤 없어보이는 화려한 경력은 뭇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업무능력이 출중하면 인간적 매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관례. 과연 그럴까. 유상호(48ㆍ사진) 한국투자증권 사장의 진면모를 엿볼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해 6월 광주 전남에서 SOS가 날아들었다. ‘경쟁사가 우후죽순 점포를 내면서 직원을 쓸어가려는 움직임 포착. 내부 동요 심각해 지점장들 힘으론 역부족. 비상!’ 유 사장은 자율 소집령을 내리고 금요일 저녁 비행기로 광주로 날아갔다. 광주 전남 전북에서 90명이 모였다.
유 사장은 심각한 대책회의 대신 200만원에 ‘술은 무한대 제공’이란 단서를 달아 술집 하나를 빌려 술판을 벌였다. 직원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신나게 노래 불렀다. 술집 주인이 “술이 동 나서 더는 못 주겠다”고 버티자 돈을 더 주고 술을 시켰다. 한바탕 잔치에 취한 직원들도 마음을 열었다. 그 뒤 호남에서 이직률은 제로였다.
#유 사장은 취임 후 부장 및 상무보 승진자에게 부부 동반 해외연수를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56명(부장 40명, 상무보 16명)이 혜택을 누렸다. 업무와 육아에 치여 엄두도 못 냈던 ‘제 2의 신혼여행’을 회사가 보내준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공짜가 없는 법, 유 사장은 꼭 떠나보내는 날 해당 부부에게 점심을 대접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린다. “여행가면 부부가 손을 꼭 잡고 다니세요.”
유 사장은 행복의 참뜻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경영철학 첫머리가 ‘나와 일하는 사람은 행복해야 한다’ 다. “저 역시 행복을 위해 사는데 그러려면 먼저 남의 행복부터 챙겨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생활이 불행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성과위주의 경제적 보상과 더불어 감성경영 스킨십 경영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직원 행복이 고객의 행복으로 연결되고, 결국 자신에게도 행복의 기운이 스며든다는 논리다.
그는 무엇보다 최고경영자(CEO)와 직원들이 마음을 열고 격의 없는 관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해 왔다. 부부동반 해외연수뿐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신입 직원이든 간부든 자신에게 메일을 보내면 24시간 안에 답을 한다는 원칙도 지키고 있다. 분기마다 최우수 직원을 초청해 식사를 나누고, 최우수 점포는 의무적으로 시간을 비워 업무 후에 직접 찾아간다. “회사와 CEO가 지향하는 비전을 공유하는데 지속적인 만남과 분위기 조성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할 정도다.
여성 직원의 복리향상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육아휴직 지원금 및 임신 검진비용 지원 외에도 ‘여성인사 도우미’도 인사부 안에 도입했다. 덕분에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들어 남녀고용평등우수기업(노동부) 가족친화 모범기업(서울시) 등을 수상했다.
사회공헌 활동 역시 ‘행복’에 맞춰져 있다.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위한 멀티미디어 교육시스템 후원, 업계 최초로 발간한 ‘주식워런트증권(ELW) 투자안내서’의 수익금을 아동복지시설에 기부, 임직원이 점심 한끼를 굶고 마련한 비용으로 백혈병 어린이 돕기, 베트남 의료봉사단 활동 등이다. 유 사장은 “TRUE FRIEND(진정한 친구)란 슬로건처럼 기업의 이익을 꾸준히 나누고 싶다”고 했다.
행복에 이어 강조하는 ‘최고의 인재-최고의 대우-최고의 성과’(최고의 회사) 원칙도 차츰 뿌리내리고 있다. 지난해 유 사장은 한국투자증권 창사 이래 최고의 업적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본격적인 투자은행(IB)의 선결 조건인 자기자본 증가율 1위, 회사채발행 주관, ELW발행 주관,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부문 1위 등 IB 업무 실적도 탁월하다. 자기자본 투자(PI)도 국내 1위(1조3,500억원)였다. ‘BK(위탁매매)+AM(자산관리)+IB+PI’로 이뤄진 수익구조도 조화롭다.
그는 베트남 중국 동남아 러시아를 잇는 4대 금융허브를 구축하며, 금융영토 확장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엔 중동을 포함한 이슬람 금융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그는 “중동의 투자방식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투자(예컨대 주류나 돼지고기 관련 산업에 투자하지 않는 것)와 일반 투자로 나뉘는데 최근 율법에 따른 투자 규모를 늘리려는 추세라 이에 맞는 틈새상품을 개발해 중동의 부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상황은 녹록치 않다. 그는 “지난해 시장이 좋았던 게 실적에 반영된 부분도 있다”며 “장기 목표(2014년 아시아 톱5 진입)로 가는 기반 및 제도 정비, 직원들의 일치단결 구축이라는 점에선 망렷舊嗤?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수익률이 저조한 베트남펀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베트남이) 위기를 딛고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요즘처럼 시장이 안 좋을 때 증권사 수장이 전면에 나서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유 사장은 “고객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공감대를 갖는 게 좋지, 뒤로 빠지는 모습은 옳지 않다”며 “현재로선 투자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 밖엔 드릴 게 없지만 너무 고민하지 말고 호흡을 길게 가지면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사진=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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