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성추행을 당한 결과 정신분열증에 걸렸다면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994년 8월 군에 입대한 A씨는 이병 시절 선임병으로부터 수차례 성추행을 당하자 이를 견디다 못해 부대에 신고했다. 군 헌병대는 해당 선임병을 구속하면서 A씨를 상대로 피해자 조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추행 사실 등이 부대원들에게 알려지면서 A씨는 또다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바로 부대원들이 자신을 집단으로 따돌린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A씨는 “누군가 내 밥에 독을 넣었다” “전화를 도청하면서 나를 죽이려고 감시하고 있다”는 등 횡설수설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결국 입대 10개월 만에 정신분열증 판정을 받고 의병 전역했다.
하지만 증상은 이후에도 호전되지 않았다. 과대망상 및 환청이 그치지 않자 A씨는 2006년 “군에서의 성추행 및 ‘왕따’가 원인”이라며 서울지방보훈청에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일반적으로 정신분열증은 단일한 사건이나 사회적 경험으로 발병한다고 판단할 수 없으며, A씨 주장에 대한 충분한 인과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A씨는 이에 보훈청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고,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단독 함종식 판사는 “성추행의 피해자로 조사를 받고 선임병이 전출가는 과정에서 생긴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했던 것으로 보이는 만큼 A씨의 정신분열증은 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발생한 결과로 보인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비록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라 고집이 세고 산만하며 불안정한 경향이 있었다고는 하나 군 입대 당시까지 정신과적인 질환으로 치료받은 적이 없고, 발병 시기나 의학적 소견들에 비춰 봐도 성추행 사건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군 복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A씨는 국가유공자 예우 및 지원법상 공상군경(公傷軍警)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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