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가계부채’태풍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태풍주의보’정도다. 엄밀히 말해 두 나라의 태풍 경로는 닮은 듯, 다르다. 급격한 가계부채 증가에 이은 금리인상과 부동산 자산가치 하락 조짐 등 미국이 겪은 태풍의 전조는 우리에게도 비슷한 상황. 물론 아직은 태풍이 한국경제를 비껴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많지만, 낙관할 수 만은 없다는 목소리도 높다.
● 위기, 어떻게 잉태됐나
미국의 가계부채가 급증한 직접적 요인은 장기간 저금리 속에서의 ‘과잉소비’와 ‘주택가격 상승’이다. IT버블 붕괴 이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000년 말부터 2004년 11월까지 연 2% 이하의 저금리를 무려 3년간 지속시켰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미국 가계의 과잉소비와 함께 주택가격 역시 빠르게 상승해 대출이 급격히 늘어났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를 통하면 집값의 100% 가까이를 대출 받을 수 있게 한 규제완화는 대출부실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 역시 과잉유동성과 부동산버블이 맞물리면서, 과도한 주택담보대출(가계대출중 61%)이 가계부채를 키웠다. 이 과정에서 소득에 비해 부채는 훨씬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물론 전문가들은 대출의 ‘질’에서 미국과 큰 차이가 있음을 지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가계부채를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으로 유동화 시켰고 이것이 대출 사후관리 부실과 금융기관 연쇄부도 등을 초래했다”며 “우리나라는 이 같은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이 많이 팔리지 않아 대출부실이 금융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이 가계부채를 악화시킬 가능성은 있다”면서 PF부실→미분양 속출→건설경기 악화→주택가격 하락→가계 주택담보대출 부실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어떻게 터졌나
잠재적으로 존재했던 미국의 가계부채 위험이 터진 결정적 계기는 과잉유동성과 집값 거품붕괴를 우려한 FRB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었다. 금리인상은 대출이자 부담을 높여 주택 수요감소→주택가격 하락→연체율 급증→주택 차압률 급증→CDO 등 채권가격 급락→금융회사 연쇄 손실 등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심상치 않은 집값 조정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자산가치하락 우려는 미국과 비슷하다. 중앙은행이 조만간 금리인상은 단행하려는 것도 유사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자산가치 하락에 따른 가계대출 부실화의 초기단계로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금융연구원 강종만 연구위원은 “물가와 금리상승의 여파로 주택담보대출이 빠르게 부실화할 수 있다”면서도 “대출연체에 따른 은행의 부실 가능성은 낮다”고 주장했다. 올해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이 작년 말 대비 52.2%에 그쳐 대출액에 비해 담보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에 채권회수가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금리인상 역시 미국처럼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할 거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금리를 1%에서 5.5%까지 급격하게 올리면서 상환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연체율도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그러나 “급등세에 있는 물가와 경기침체까지 더해진다면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가계의 부채부담은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침체를 오래 끌고 갈 수도 있다.
● 어떻게 막고 있나
미국은 최근 금융위기에 대해 당국이 직접 나서 공적자금을 쏟아 붓는 사후적 처방에 그치고 있다. 아직 위기가 본격화하기 이전인 우리나라는 금융당국의 사전 모니터링과 금융권 자체 리스크 관리 강화 등 사전대처에 나서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최근 은행장들을 만나 “리스크 관리에 매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역시 이 달부터 ‘잠재 리스크 전담반’을 구성해 운영키로 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작년 LTV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어 가계대출 부실이 금융위기로 발전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원은 “LTV, DTI 규제가 적용되기 이전의 주택담보대출 물량도 상당하다”며 “2005년 받은 3년 만기 대출의 만기가 곧 도래한다”고 지적했다.
문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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