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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연극 '원전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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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연극 '원전유서'

입력
2008.07.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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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문화예술진흥법 공포 이래 연극 분야에서 가장 치중한 것이 창작극 지원 정책이었다. 해외 번역극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바로잡고 우리 연극의 자생력을 북돋기 위해 마련된 방향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들면서 수적으로 창작극이 우세했으나 오늘날은 상업화의 격류에 휩쓸려 관객몰이가 가능한 재공연물이 극장을 선점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손쉬운 전환물들의 점령으로 실험적 글쓰기와 독립적인 창작물은 위축된 지경이다.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문화예술위원회는 다시 한 번 창작극 진흥 방안을 내놓았다.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창작예찬’ 시리즈 4편이 2007년 시행된 ‘창작희곡 활성화 지원사업’의 열매들이다.

분단체제를 사는 두 집안의 강박증과 희생양 만들기를 다룬 오태영 작 <부드러운 매장> 은 막을 내렸고 가난한 모녀의 삶에 틈입한 폭력에의 악몽을 표현주의적 정지장면으로 만든 최은옥 작 <초원빌라 b001호> 가 공연 중에 있으며, 최치언 작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 이 개막을 앞두고 있다.

21일 막을 내린 김지훈 작 <원전유서> 는 4시간이 넘는 공연분량만으로도 충분한 화제를 일으켰다. 자칫 모호하고 난삽할 수도 있었을 신인작가의 말들의 범람과 넘치는 극적 발상을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의 잘 훈련된 화술과 신체 연기로 너끈히 해냈다.

작가(이윤택 연출)의 주제의식은 삶의 근본 자리를 살피자는 것. 밥상과 침상을 나누는 가족의 터전 ‘집’이, 생명을 기르는 텃밭이어야 할 ‘땅’이,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지번 없는 무허가입주자 유민을 생산하고 ‘동산’, ‘부동산’으로 가치 전락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담아냈다.

이 가치가 전도된 세상에 대한 고뇌가 쓰레기 산을 배경으로 잠언 같은 대사와 화려한 수사를 통해 펼쳐진다. 특히 빈민 활동가 ‘남전’과 ‘덕공’을 통해 (우리 연극에 부족한) 사상과 논변을 쏟아놓고, ‘토지국장’ 관료의 입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더욱 부조리한 언어로 쏟아놓는 솜씨가 발군이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착한 사람> 을 연상케 하는 쓰레기 산을 굽어 내려 보는 신들의 시선, 쓰레기 더미 사이로 출몰하는 사슴의 환영, 마술처럼 무대 바닥에서 솟는 연초록 상추 잎, 매 맞아 죽은 소년의 몸이 키워 올리는 소나무 한 그루 등 다양한 상징과 알레고리 장치는 비루한 사실 세계 너머를 응시하게 한다.

창작극 지원 정책의 방향은 완성도 높은 희곡문학 생산 단계에 만족하지 않고, 미학적 탐구와 모색을 통한 무대화가 가능하도록 극단과 작가 사이 협업 시스템을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함을 확인한 자리다.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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