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로 인도-중앙아시아-페르시아-아랍-중국을 일주하는 여행을 감행할 당시 혜초는 혈기 넘치는 스무 살 승려였죠. 그가 꾸밈말이나 감정 개입 없이 단단한 문체로 써내려간 <왕오천축국전> 의 이면, 실크로드의 사막ㆍ고원을 헤쳐나가는 험난한 여정과 젊은 날의 찬란한 낭만을 소설로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왕오천축국전>
'한국 팩션의 기수' 김탁환(40ㆍ사진)씨가 이번엔 통일신라로 눈을 돌렸다. 그가 <열하 광인> 이후 10개월 만에 발표한 장편 <혜초> (민음사 발행ㆍ전2권)는 통일신라 고승 혜초(704~787)의 기행문 <왕오천축국전> 을 주요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다. 왕오천축국전> 혜초> 열하>
혜초와 동년배로 추정되는 고구려 출신 당(唐)나라 장수 고선지(?~755)가 소설에서 혜초와 '투톱'을 이룬다. 혜초와 고선지가 마주쳤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두 건의 사료에 기대 김씨는 둘의 행적을 한데 꼬아 작품 전개의 동아줄로 삼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슬람 군대의 공격을 받았다는 제후국을 지원하려 사막길을 행군하던 고선지는 모래 폭풍에 병사를 모두 잃고 홀로 남는다. 모래 밑에 파묻혀 정신을 잃은 혜초를 걸머지고 귀환한 고선지는 출정했던 휘하들이 정체 모를 병에 걸려 모두 죽었음을 알게 되고, 자신도 그 병을 앓기 시작한다.
한편 기억을 잃은 채 간첩으로 몰리던 혜초는 감옥을 탈출, 자신의 여정이 고스란히 적힌 양피지를 보관 중인 신라 상인 '김란수'를 찾는다. 김란수는 혜초에게 양피지 기록을 하루 한 장씩 제공하면서 혜초의 망각 상태를 악용해 음모를 꾸민다.
소설은 김란수에 끌려다니는 혜초, 병 치료법을 알아내려 혜초를 쫓는 고선지, 당에서 무희(舞姬)로 일하는 속내 모를 서역 여인 '오름'을 주축으로, 현실과 양피지 기록을 각각 홀수장과 짝수장에 교차 배치해 사건 전모를 점차 드러내는 미스터리 구성을 취한다.
김씨는 "장대한 여정을 밟으면서 혜초가 틈틈이 자기 견문과 감상을 상세히 메모했으리라는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이번 소설의 짝수장"이라며 "그렇게 풍부한 자료를 모으고도 혜초는 왜 그토록 단단하고 압축적인 기행문 <왕오천축국전> 을 남겼을까라는 의문을 해명하려고 이번 소설을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왕오천축국전>
현장 답사와 치밀한 고증에 기반한 김씨의 창작 방식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 단지 이번 경우엔 소설만을 위한 소박한 답사 여행이 아니라, 김씨가 교수로 재직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차원에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왕오천축국전 디지털 콘텐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인도, 중국, 이란 등을 다녀왔다는 점이 다르다.
인도 답사엔 혜초 전문가인 정수일(74)씨가 동행해 김씨의 충실한 자문역이 돼줬다. 그 결과물인 <왕오천축국전> 한국어 번역, 혜초의 여정을 복원하는 사진ㆍ동영상ㆍ3D 영상물 등을 9월쯤 오픈할 홈페이지(cp0703.culturecontent.com)에서 볼 수 있다. 왕오천축국전>
김씨는 "8년 전 <왕오천축국전> 을 읽은 후 줄곧 쓰고 싶었던 작품인데 예산과 자문, 두 난관이 한꺼번에 해결돼 꿈을 이뤘다"면서 "3년 전부터 자연과학적 영역까지 지식과 관점을 확장한 SF를 쓰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왕오천축국전>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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