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분석가인 미국인 스티브 피치니(29)는 얼마 전 보물처럼 아끼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처분하고 혼다의 중형차 어큐라를 장만했다. 그는 “전에 타던 차에 비하면 연비가 세 배는 좋다”며 “이제 큰 차는 사지 않겠다”고 AP통신이 전했다.
필라델피아 외곽에 사는 다이앤 맥레오드(47ㆍ여)는 몇 년 전 씨티그룹, 캐피털원, GE캐피털 등 금융기관 3곳에서 대출을 받아 집과 차를 구입했다. 그 동안 세전 수입의 40%에 이르는 연 2만달러를 이자로 물어 온 그는 최근 생활이 쪼들리면서 이자를 연체하게 됐고, 매일 20통이 넘는 독촉 전화를 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0일 보도했다.
점점 조여오는 가계 빚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과 가계 빚 부담 등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미국 가정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금융기관의 높은 이자와 각종 수수료가 미국 가계를 짓누르고 있다. 미국인의 총 가계 부채는 총 2조5,600만 달러.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가계 당 신용카드 부채 역시 8,565달러로 2000년보다 무려 15% 늘었다. 가구 당 평균 부채는 11만 7,961달러나 된다.
2세대 전만 해도 검소한 생활을 하던 미국인들이 사치를 일삼게 된 것은 후한 대출 관행과 신용카드의 남발 때문이다. NYT “남녀노소, 인종, 부의 정도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라도 대출을 해주는 관행이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몰아세웠다. 카드사들은 ‘부자처럼 사세요(씨티은행)’, ‘삶은 비자가 필요하다(비자카드)’ 등 광고와 함께 경제력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졸업 전 10만달러까지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남발했다.
광고대행사인 매켄 에릭슨의 조나단 크래닌 부회장은 NYT에 “사람들은 원래 죄책감을 느끼며 소비하기 마련인데, 신용카드사의 광고는 소비는 기분 좋은 것이라는 의식을 확산시켰다”고 말했다.
다시 검소한 생활로
가계대출 압박에 물가 상승, 농산물 가격 상승 등이 겹치면서 미국인들은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는 유흥비와 외식비 등을 줄이고 있고, 49%는 질이 나쁘더라도 값 싼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국제쇼핑센터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같은 매장에서도 할인품목의 판매는 5.1% 늘었고, 할인매장의 대명사격인 월마트도 매출이 5.8%나 상승했다.
반면 백화점 판매는 4.1% 하락했다. 마케팅조사기관인 닐슨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18%나 늘어난 것이다.
소비 형태가 변하면서 기업들도 생존을 위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일본의 도요타는 생산라인을 전면 개편해 트럭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생산라인을 폐쇄키로 했다. 프레드 클레멘 자전거판매연합회장은 출퇴근용 자전거 수요가 증가해 “진열 품목을 다양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의 긴축재정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 비슷하다. 하지만 경제난에 따른 미국 소비형태 변화는 더욱 광범위하고 급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AP통신은 20일 “70년대에는 유가가 하락하자마자 사람들이 다시 비싼 SUV를 구입했다”며 “하지만 경기 침체가 오래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이 같은 미국인의 생활형태 변화는 고착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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