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타계한 소설가 박경리씨가 일본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서술한 유고 산문이 발견됐다. <일본산고(日本散考)> 라는 제목의 유고는 원고지 63매 분량의 육필 원고로 1편 ‘증오의 근원’, 2편 ‘신국의 허상’, 3편 ‘동경 까마귀’로 구성돼 있다. 이중 ‘동경 까마귀’는 원고지 13매 분량의 미완성본으로, 다른 두 편은 원고지 25매의 완성본이다. 일본산고(日本散考)>
18일 박씨의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관장은 최근 모친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번 원고를 발견했다며 “10~20년 전에 쓰시다가 잊고 놔두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생전 강연이나 산문을 통해 일본의 외교적ㆍ문화적 행태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증오의 근원’에서 박씨는 우리가 세대를 불문하고 일본을 증오하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면서 “(일본인들이) 도래인이라 표현하는 한족(韓族)이 그들 지배계급을 형성했던 것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심정일 것이며 가능하다면 일본 인종을 일본열도 고유의 인종이기를 바라는 것이 본심일 것”이라며 그 이유를 분석했다.
박씨는 글 말미에서 “지금에 와서 우리와 일본이 동족 어쩌고 하는 것도 실은 진부한 얘기”라며 “서로 이해하게 되면 좋고, 다만 인류라는 자각으로 나를 다스려가며 앞으로 이 글을 써 나갈 생각”이라고 적었다.
‘신국의 허상’은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짚은 글이다. 박씨는 “과거 일본의 역사학, 특히 국사학의 학자들은 황국사관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역사에 무수히 많은 땜질을 했고 또 많이 쏠아내고 했다”며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이어 “(학자)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면서 “왕권확립을 위하여 왕실미화는 필수조건이며 따라서 날조와 삭제 표절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적었다.
‘동경까마귀’에서 박씨는 일본문학에 까마귀가 등장하는 일이 잦다며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짙은 우수와 허무주의가 깔려있다”고 진단한다. 이어 서울 정릉에 살 때 일꾼들이 한가한 말투로 징용을 화제 삼는 것을 본 일화를 전하며 “낙천이랄까 해학이랄까…(중략)…바로 그런 것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을 것이며 또 바로 그런 낙천적 해학이 갖는 여유 때문에 끝내는 이 민족이 망하지 않고 긴 세월 존속돼 온 것이 아닐까”라고 적었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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