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장제스(蔣介石 1887~1975) 전 대만 총통이 생전에 57년 동안 써온 일기 가운데 1946년부터 55년까지 분이 공개돼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는 보관 중인 1915~72년 장제스 전 총통 일기를 2006년부터 매년 일부씩 나눠 공개해 왔는데 지난 18일(현지시간) 1946~55년 분에 대한 열람을 개시했다. 작년까지 1915~45년 일기가 공개를 마쳤다.
이번에 공개된 일기는 국민당이 중국공산당과의 국공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쫓겨난 경위와 국민당 정부가 대만 주민의 저항운동을 무력 진압한 47년의 ‘2ㆍ28 사건’에 관한 기술이 있어 세계 2차대전 직후 양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연합보가 20일 전한 바에 따르면, 후버연구소는 올해 장제스 전 총통의 일기를 예년처럼 3월에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대만 총통 선거와 겹치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 시기를 7월로 늦췄다고 한다.
시간 상 대만에선 그간에 국공내전과 2ㆍ28 사건 외에도 헌법 제정, 리처드 닉슨 미국 부통령 대만 방문, 미-대만방위조약 체결 등 중대사들이 잇따랐다.
이번에 공개된 일기 가운데 학자와 연구자들이 가장 주시하는 것은 2ㆍ28 사건 후 장제스 전 총통이 어떤 결정을 내렸으며 실제로 당시 천이(陳儀) 대만행정장관겸 경비총사령에게 무력진압을 명령했는지 여부다.
즉 장제스 전 총통이 대만 과거사 최대 비극인 2ㆍ28 사건의 실제 원흉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데 일기 내용에 대한 열람이 진행되는 대로 진상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보는 이제 막 민감한 시기의 일기가 공개돼 전부를 열람한 학자가 없는 점에서 전문가의 분석과 해석을 기다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버연구소에서 2ㆍ28 사건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마뤄멍(馬若孟)은 사건 발생 직후 장 전 총통이 여러 차례 친필 명령문를 통해 “보복하지 말 것(不可報復)”과 “관대히 처리하라(從寬處理)”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마뤄멍 연구원은 “장제스 전 총통이 2ㆍ28 사건의 원흉이 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 전 총통이 2ㆍ28 사건을 ‘비극’이라고 정의했다며 “그가 학살을 명령했다는 신빙성 있고 유력한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장세스의 육필 일기는 유족이 2005년 장남인 고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일기와 함께 후버연구소에 관리를 위탁했다.
유족 대표인 장징궈 전 총통의 셋째 며느리 장팡즈이(蔣方智怡)는 연합보와 인터뷰에서 연구 목적으로 매년 봄 10년치 정도의 일기를 공개, 2009년까지 모두 열람시키기로 후버연구소와 약정을 맺었다고 설명했다.
장팡즈이는 “2ㆍ28 사건 경우 대만에 입힌 상처가 너무 큰 점을 감안해 최근 수년간 정부에 많은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며 “하지만 애석하게도 정부가 이를 활용하거나 인용해 2ㆍ28 사건의 응어리를 풀거나 진상을 규명하려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장제스 부자의 일기를 후버연구소에 맡기려 결정했을 때 수많은 외부 압력을 받았으나 연구소의 전문성과 학술연구 실적을 높이 사 그대로 밀고 나갔다고 털어 놓았다.
장팡즈이는 장 전 총통이 일기에 사건의 진상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반성, 깊은 고뇌가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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