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첵과세상/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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첵과세상/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입력
2008.07.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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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홍 지음/현실문화연구 발행ㆍ808쪽ㆍ3만2,000원

‘소중화주의’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자존자대하던 중세국가 조선은 소심하고 겁이 많은 나라였다. 19세기가 거의 다 가도록 공식외교관계는 중국과 일본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일반백성이 외국인과 말을 나누거나 물건을 주고 받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오직 지방 관리들만이 공식적으로 서양인들과 대화할 수 있었다. 영국, 포르투갈, 프랑스, 네덜란드, 프랑스 등 ‘지리상 대발견’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유럽의 제국들에게 조선은 숨어사는 서늘한 미인처럼 환상과 신비로 가득찬 금단의 왕국이었다.

재단법인 이단문고의 학예실장인 지은이는 16세기말에서 1860년대까지 이양선(異樣船)을 타고 조선의 바다에 나타난 서양인과 조선인들의 접촉을 풍부한 사료를 통해 재구성한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같은 조선정부 공식사서는 물론이고 ‘하멜표류기’ ‘라페루즈의 항해’ 등 조선과 조우한 이방인들이 남긴 일기, 여행기, 항해일지, 편지 등을 섭렵했다. 책에는 타자와 접촉했을 때 서로가 상대에게 품게 되는 두려움, 경계, 호기심들이 손에 잡힐 듯이 묘사된다.

저자는 특히 신분에 따라 차별적이었던 조선인들의 외부인에 대한 태도에 주목한다. 이방인들이 통상을 요구하건 포교를 요구하건 조선의 관리들이 보인 태도는 극단적인 폐쇄성이었다. 정식으로 통상을 요구하는 영국상선 로드애머스트호를 돌려보낸 뒤(1832년) 조선의 조정이 한 일은 청에 “번신(조선)은 외교권이 없고 변방은 제 분수에 맞게 지켜나가는 도리를 안다”는 보고서를 올린 것이었다.

반면 민중들은 달랐다. 지배계층이 강요하는 외국인 접촉 금지라는 철칙 때문에, 이들을 처음 접하면 달아나거나 뭍에 닿기만 하면 목이 달아날 것이라는 위협의 몸짓을 했지만, 이내 파란 눈의 수부(水夫)들이 권하는 궐련을 빨기도 하고, 영어를 배우기도 하고, 물을 길러주기도 하면서 시나브로 금기의 영역을 깨뜨려간다.

저자는 여기서 “타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그들과 공존하는” 민중적 지혜를 발견한다고 적는다. 서양인들을 ‘악령’이라고 칭하며 중세적 질서에 집착했던 지배층과 달리, 모든 것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근대정신의 씨앗은 이 같은 익명의 민중들에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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