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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악성(惡性) 인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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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악성(惡性) 인플레

입력
2008.07.2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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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이면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때가 불과 얼마전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돈으론 절반 밖에 채우지 못한다. 내 돈의 반이 그냥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인플레를 ‘형체 없는 도둑’이라 부른다. 그냥 강도라면 저항이라도 해보고, 신고라도 해보겠지만 인플레에겐 그마저 통하지 않는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그나마 인플레는 ‘의적(義賊)’이 아니다. 부자보다는 서민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준다. 비열한 도둑이다.

인플레 중에서도 가장 몹쓸 것으론 부동산이 으뜸이다. 집값이 뛰면 주택보유자와 무주택자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진다. 1주택자야 그렇다 해도 다주택자들이 집값 상승에 편승해 전ㆍ월세료까지 인상함에 따라, 세든 서민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집값 인플레는 가난한 사람의 돈을 부자에게 넘겨주는, ‘불량 강도’인 셈이다.

서민들이 빼앗기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내집 마련의 꿈마저 강탈해간다. 남는 것은 줄어든 재산과 허탈감, 그리고 적개심뿐. 그래서 집값 인플레는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 국민정서의 문제가 된다. 다른 인플레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제안정과 사회통합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악성종양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에겐 집값 인플레의 쓰디 쓴 추억이 있다. 오래 전도 아니고, 불과 1~2년전 얘기다.

강남 재건축 지역에서 ‘버블세븐’ 지역으로, 용산으로, 다시 강북과 수도권 북부로 전염병처럼 옮겨 다니며 그 무시무시한 위세를 떨쳤다.

서민들은 서민들대로 잃어버린 돈과 꿈에 눈물을 흘렸다. 평생 집 한 채 장만해 살아오던 중산층 또한 뒤늦게 정부가 휘두른 칼(세금폭탄)에 큰 상처를 입었다. 오죽하면 스스로 “꿀릴게 없다”며 고개를 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조차 부동산 만큼은 실패를 자인했을까.

폭등하던 집값을 붙잡은 게 불과 엊그제다. 가격도 조금은 내렸다. 그러자 시장에선 기다렸다는 듯 ‘침체’를 말한다. 3억~4억원 오른 아파트값이 1억원쯤 빠진 것을 두고 ‘시장이 죽었다’고 한다. 인플레는 잡았을지 몰라도, 인플레 기대심리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정부ㆍ여당은 이제 숨은 불씨에 기름을 부으려 하고 있다. 고위 관계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재건축완화, 분양가상한제 재검토, 종합부동산세 손질을 얘기하고 있다. 침체된 부동산시장을 살리고 과도한 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적어도 시장은 이를 집값 상승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려는 분위기다.

물가안정은 정부ㆍ여당 자신이 정한 경제운용 최우선 과제다. 물가잡기에 총력전을 편다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집값을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인지. 지금 같은 살인적 고물가 국면에서 악성 중에서도 악성 인플레인 부동산까지 들썩거리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정말로 모르는 것인지. 집값 묶어둘 자신이 있으면 재건축을 풀어도 좋고, 종부세를 아예 없애도 좋겠지만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예 얘기도 꺼내선 안 된다.

부동산시장 안정은 좌파, 우파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 건드리면 경제는 물론 정권도 흔들릴 수 있다. 바로 직전 정부가 그랬는데, 현 정부ㆍ여당은 벌써 그걸 잊었나 보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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