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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입력
2008.07.2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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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 창비

김선우(38)가 2000년에 낸 이 첫 시집을 다시 읽다보니, 미당 서정주(1915~2000)가 1941년에 낸 <화사집> 이 자꾸 연상된다. 여성과 남성이란 점이 다를 뿐, 거침없고 능수능란한 언어의 구사가 참으로 닮았다. <화사집> 에 실린 미당의 시들이 우리 현대시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면, 김선우의 이 시집은 21세기의 들머리에 그 놀라운 여성성의 시어로 주목받았다.

미당은 시 ‘자화상’에서 ‘밤이 기퍼도 오지 않’는 ‘애비’를 기다렸다. 김선우는 ‘빈 집’이란 시에서 어머니를 기다린다. ‘고분처럼 폐석더미 쌓인 마당/ 발가벗은 아이 혼자 놀고 있었다/…/ 흰 구름 데리러 간 엄마는 왜 안 오나/ 깨꽃 입술만 흙집 싸리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우름을 밤새 우렀다’(시 ‘문둥이’)고 미당은 썼었다. 김선우는 어떤가. ‘아기 하나 낳을 때마다 서 말 피를 쏟는다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처럼/ 수의 한 벌과 찹쌀 석 되/ 벽장 속에 모셔놓고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다.

미당이 기다리던 아버지는 김선우에게는 어머니로 바뀌고, 미당의 시에서 아기 먹고 울던 문둥이는 김선우의 시에서는 아기 낳기 위해 서말씩 피를 쏟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된다. 참으로 닮았지 않나. 어쩌면 우리사회에서 여성성이란 것이 적극적으로 제말 할 수 있게 된 데는 서정주와 김선우의 시집 사이 60여년의 시차,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지 모른다.

김선우의 시는 그렇게 여성만의 관능과 격정과 생명력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언어로, 읽는 남성들 낯뜨겁게 할 정도로 펄펄 살아 있다.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얼레지’ 부분). 억눌리며 숨겨왔던 여성의 몸과 마음에 대한 기억을 싱싱한 말과 생생한 이미지로 펼쳐놓는다. 하지만 “내 뼈가 살을 향해 내 살이 뼈를 향해 이토록 부대끼는 시끄러운 싸움은 언제 끝나려는지”라는 김선우의 말을 보면 그렇게 쓰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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