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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앙금빵… 야채빵… 낭만·추억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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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앙금빵… 야채빵… 낭만·추억 "맛있다"

입력
2008.07.2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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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정독도서관 자리에 있던 학교에서 쪼로록 걸어나오면 길 건너 안국동 초입에 꿀빵집이 있었지.”

나의 아버지는 회상하신다. “동전 만한 빵에 팥소를 넣고 튀겨 뭔지 모를 단물을 입힌 것이…” 아버지의 말씀을 끊고 엄마가 한마디 거드신다. “이름은 꿀빵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시럽이었던 것 같아. 설탕물.” 아빠의 회상이 이어진다. “나는 버스비를 아껴서 야구공을 사고 싶은 마음에 그 꿀빵이 늘 먹고 싶어도 사 먹지 못했다.”

동갑내기 연인으로 만나 그 옛날 연애결혼을 하신 두 분은 종종 이렇게 학창시절 추억을 공유하신다. 남학생들은 빵값이 있어야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우유는 너무 사치스러운 음료라서 물이나 보리차와 빵을 먹었다는, 아빠는 꿀빵을 참고 걸어가던 하교길이 너무 싫었다는 사실을 나는 새로이 알게 된다. 그리고 보니, 남의 나라 것이라 생각했던 빵도 우리와 함께 한 지 반세기가 넘은 먹거리가 됐다.

■ 군산의 사랑방, 이성당

해방과 함께 시작된 ‘이성당’의 내공은 그러니까 올해로 63년째. 아직도 매장에 나와 손수 둘러보시는 오남례(74) 할머님은 이성당의 산 증인이시다. 열아홉에 시집 오셨을 적부터 시댁에서 운영하는 양과자점 이성당의 한 축을 맡아 일하셨으니, 한평생을 이성당 정가운데서 보내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부터 오남례 여사의 며느님 김현주(46) 대표께서 바통을 이어받아 맛난 빵을 만드신다. 시어머님이 일궈놓은 좋은 밭을 한결 더 풍성하게 가꿔가시는 김 대표를 뵙고자 군산에 내려갔다.

“오여사님도, 대표님도 피부가 어쩜 그리 고우세요. 팥이랑 뭐랑 좋은 식재료만 드셔서 그러신가요?” 두서없이 대뜸 여쭈었더니. “피부는 무슨(웃음), 날씨도 더운데 어서 이거나 하나씩 드셔보세요” 하신다. 사진가와 내가 기다리던 테이블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예쁜 볼에 담고, 커피를 부은 모양의 디저트가 나왔다.

엇, 프랑스에서는 딱딱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먹기는 하지만. “프랑스 식을 좀 응용했어요. 하지만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우리 집(이성당)만의 레시피지요. 한 삼사십년 된 비율이에요.”

백문(百聞)이 불여일식(不如一食)이라, 한 입에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가득 물어보니. “와! 아이스크림 맛이 정말 독특하네요.” 호들갑부터 터져 나왔다. 무언가 시원한 청량감이 있으면서 바닐라 빈의 정다운 향기가 목구멍에 퍼지고.

참을성 없는 나는 매장에 가득한 빵을 맛보기 시작했다. 앙금빵, 야채빵, 소보루빵, 버터빵…. 내가 꼬마 때 먹던 레퍼토리들이 이곳 이성당에서는 여태 베스트셀러였던 것.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한 무리 매장에 들어선다. ‘저 아이들은 페스츄리나 샌드위치를 먹겠지.’ 두 눈으로 주시했다. 웬걸, 파릇한 아이들이 투박한 옛날 빵만 한 쟁반 골라 가져간다. 대표님은 “신세대의 입맛에 맞춰 페스츄리 등을 만들기는 하지만, 이성당의 주력 상품은 어제나 오늘이나 옛날 빵”이라고 했다.

직접 만드는 팥소를 넣어서 맛이 다른 앙금빵은 하루에 700~1,000개, 속이 든든해지는 야채빵은 300개 수준으로 팔려나간다. 백화점에 분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군산 어느 사거리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단일 매장만으로 그 정도 매출을 올린다는 것이 놀라웠다.

“왜 분점을 안 내시냐”는 우문(愚問)에 “여기랑 똑 같은 맛을 분점에서 어떻게 내요. 완벽하게 같은 맛이 아니면 분점은 의미가 없지요”라고 현답(賢答)하시는 대표님. 그때 옆 테이블에 앉았던 젊은 아기 엄마들이 나를 알은 척 해준다. “박재은씨도 이성당 빵 드시나 봐요? 빵 사러 군산까지 오셨어요?”

나보다 좀 어린가, 내 또래인가 하는 그녀들의 말로는 이성당 빵 맛을 한 번 본 친구들은 툭하면 이 집 빵 이야기를 한단다. 특히 서울로 시집 간 친구는 임신을 하면서 유독 “이성당 빵 한 개만 먹으면 입맛이 확 날텐데” 한다고. 그녀들에게는 이성당 빵이 학창시절로 잠깐 되돌아가게 해주는 먹거리임이 틀림없으리라.

이성당에서는 몇년 전부터 쌀가루를 이용한 빵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밀가루보다 몸에 좋은 쌀가루를 이용, 웰빙 시대에 맞는 제품을 제안하기 위해. 쌀가루로 만든 앙금빵을 먹어보니 쌀로 만든 피가 아주 담백하고, 본디 쌀과 팥은 궁합이 좋은지라 오히려 밀가루 빵보다 입에 맞았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오남례 할머님은 빵 정리를 하고 계시고, 북적북적 매장에는 빵을 사는 이, 앉아서 아이스크림과 빵을 가득 놓고 담소하는 이들로 활기차다. 타 지방으로 시집가면서 싸들고 가고 싶은 맛, 이성당으로 군산시민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 명품 빵, 한 입의 사치

전쟁 직후의 엄마, 아빠 세대에게는 빵 하나 먹는 것이 사치였다는데, 나는 참 풍요로운 때에 태어났구나.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맛있는 빵 하나에 우유 한 잔을 마시는 일쯤은 마음만 생기면 누릴 수 있으니.

밀가루도, 우유도, 버터도, 계란도 모두 귀하고 부족하던 시절.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은 그러나 말한다. 그때는 그래도 ‘낭만’이 있었다고. 그때도 입시에 쫓기기는 했지만, 하교 후 한 두 시간은 집으로 걸어가면서, 아껴둔 용돈으로 빵 하나 사서 나눠 먹으면서 친구들과 낄낄 깔깔거리는 ‘자유’가 있었다고.

요즘은 빵과 우유가 흔해졌어도 손 안에 들어오는 게임기로 영화를 보고,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고, MP3로 혼자 음악을 들으며 ‘나홀로 등하교’하는 학생들 천지다. 학창시절이 끝나 사회에 나가면, 그때부터는 더 외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데. 외로울 때마다 꺼내볼 ‘추억’이 없는 요즘 세대는 그래서 풍요롭고도 가난하다.

“아버지, 그때 야구공 사지 말고 꿀빵 먹을 것을 그랬지?” 장난을 쳐 본다. 한참을 망설이던 아버지는 “그때는 야구공이 꼭 필요했어.” “꿀빵을 한 번은 자셔 본 거야?” “응, 딱 한 번.” 나는 아버지가 결국 안국동 꿀빵을 맛보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양갱이나 아무리 맛난 케이크를 사다 드려도 ‘뭔가 부족해’라는 듯이 드시다 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박재은ㆍ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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