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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12> 인촨으로 날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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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교수 대장정 길을 가다] <12> 인촨으로 날아가다

입력
2008.07.1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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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족지역인 쓰촨(四川) 서북부지역의 진입에 두 차례 실패한 뒤 비행기 편으로 청두(成都)를 떠나 인촨(銀川)으로 향했다. 티베트문제로 공항의 경비가 삼엄했다.

짐 검사도 까다로워 카메라와 캠코더의 배터리 때문에 세 번이나 엑스레이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링샤(宁夏)의 수도이자 실크로드 기차의 출발지인 인촨은 인구 60만 명의 도시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구기자의 반 이상을 생산하는 구기자의 집산지이다.

인촨에 도착하자 계속 비가 오던 구이조우(貴州)나 쓰촨과 달리 황토고원과 서부 사막의 일부답게 공기가 건조하고 상쾌했다. 인촨, 그리고 홍군이 지나간 장정로여서 우리가 가려는 류판산(六盤山)은 모두 링샤 회족 자치주에 속해있다. 그만큼 이슬람교도인 회족이 많이 살고 있다.

도시도 구이조우나 쓰촨에서 봤던 낡은 도시들이 아니라 신도시로 깨끗했다. 중국 정부가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서부개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로 역시 새로 만든 고속도로였다.

동부 해안가에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시장을 겨냥한 제조업을 발전시키고 여기에서 번 돈으로 낙후한 서부내륙지방에 투자해 도로 등을 건설하는 중구의 서부개발은 정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합쳐 놓은 프로젝트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시장과 이윤의 논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에서라면 누가 장기적 관점에서 서부에 이같이 대대적인 돈을 들여 도로 등에 투자를 하겠는가? 도중에 지나간 한 도시는 이 같은 생각을 더욱 갖게 했다.

도시로 들어가자 사막임에도 불구하고 인공으로 물을 끌어들여 끝없는 물의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도로도 차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훌륭한 8차선 도로가 나타났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부자동네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 최후의 고산

류판산 지역으로 들어가자 전형적인 황토고원들이 나타났다. 이 지역은 다른 곳에 비해 모든 것이 반대였다. 다른 지역은 평지에 강이 흐르고 산들이 보인다. 그러나 황토고원의 길은 모든 것이 밑으로 있다. 차가 달리는 평지가 고원이기 때문에 길옆에 깊은 계곡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곡 아래로 물이 흐르고 집들과 마을도 계곡 아래에 있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평지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평지로 올라간다”고 이야기한다.

황토고원에서 특이한 것은 집의 지붕과 설계였다. 이 곳의 전통집들은 중국의 전통가옥처럼 지붕의 가운데가 높고 양쪽이 낮은 것이 아니었다. 한쪽이 높고 한쪽이 낮은 구조였다. 그리고 그 낮은 쪽이 마당 안쪽을 향하고 있다.

모든 것이 척박하고 비조차 귀한 곳이라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남의 집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차가 달리면서 그 같은 모양의 지붕이 나타날 때마다 황토고원의 어려운 생존조건에 가슴이 아팠다.

류판산까지는 길이 좋지 않았다. 두시간 여를 달려 류판산에 도착했다. 류판산은 쓰촨의 설산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홍군이 넘은 마지막 고산이다. 그리고 진시황과 한무제, 당태종 이세민 등은 서쪽 정벌과 북쪽 정벌을 위해, 칭기스칸은 반대로 남쪽 정벌을 위해 넘었던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산이다.

높이가 2800m로 지금은 터널이 뚫려 있지만 마오쩌둥(毛澤東)과 홍군이 넘었을 당시만 해도 구름 사이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지나야 했던 산이었다.

이 산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마오가 산을 넘으며 <류판산> 이라는 시를 지었기 때문이다. 시를 지었던 곳에 정자가 있다고 해서 찾아 올라갔다. 큰 길에서 벗어나 작은 길로 산속으로 올라갔다. 꽤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길이었다. 그런데 산꼭대기에 꽤나 큰 건물이 눈에 띄었다. 아무도 오지 않은 이 같은 산 꼭대기에 저렇게 큰 건물을 세워놓았는지 신기했다.

올라가 보자 ‘류판산 장정기념관’이었다. 내가 본 책에는 모두 정자 이야기만 하고 기념관 이야기는 전혀 없었는데 최근에 새로 만든 것이었다. 류판산은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차에서 내리자 정말 살이 엘 정도로 추웠다.

기념관 앞에는 마오가 시를 지었던 정자가 있었고 그 밑에는 ‘장정 정신을 확장하여 화해사회 건설하자’는 구호가 씌어 있었다. 또 그 앞에는 회족 특유의 창이 없는 모자를 쓴 목동이 양을 몰고 가고 그 사이를 홍군이 행진하는 조각이 있었다. 조각 역시 이 지역이 회족이 많은 지역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기념관에서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기념관 왼쪽에 서 있었던 커다란 광고판이었다. 거기에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고 샤오캉(小康)사회를 달성하자’고 씌어 있었다. 중국에 와서 많은 구호들을 유심?보아 왔지만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구호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이 구호를 보면서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란 결국 자본주의”라는 난창(南昌)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말이 생각났다. 과연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란 것이 존재하는지, 또 그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마오와 홍군에 참여한 농민들이 건설하고자 했던 사회가 소위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 시인 마오

제1, 제2, 제4방면군의 붉은 깃발을 길게 옆으로 펼친 모양 위에 ‘장정 정신은 영원히 빛나리라’라는 장쩌민(江澤民)의 글씨를 크게 확대해서 써 놓은 거대한 조형물을 지나 많은 계단을 올라가니 기념관이 나타났다.

거대한 시설이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문이 닫혀 있었다. 다행이 안에서 지나가는 직원이 우리를 보고 문을 열어줬다. 단체 관람 외에는 관람객이 없다고 한다. 하긴 교통수단이 없으니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을 것이다.

하도 비슷비슷한 진열물들을 여러 장정 기념관에서 보아서 별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 다만 류판산의 역사를 소개한 것들은 흥미로웠다. 오래 전에 지은 다른 장정 기념시설들과 달리 이 기념관은 가장 최근에 지은 것으로 최근 급속히 성장한 중국의 경제력을 상징하듯 가장 규모도 컸고 그만큼 돈도 많이 들인 것 같았다.

이 꼭대기에 이만한 시설을 지으려면 장정정도는 아니라도 무척이나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도 별로 오지 않는 이 곳에 이같이 웅장한 시설을 지을 필요가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었다. 사실 장정 기념물은 소박한 시설이 그 정신에 더 부합하는 것이 아닐지.

기념관을 나오려는데 안내원이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옥상으로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옥상으로 나가자 그 위에 높이 50m가 넘는 거대한 장정 기념비가 나타났다.

지금껏 본 것 중에서, 아니 존재하는 장정 기념물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기념물이었다. 단지 비석으로 세운 것이어서 그런지 조각도 없고 그냥 밋밋한 4각형 모양이었다. 거기에 ‘류판산 홍군 장정기념비’라고 쓰고 마오의 유명한 <류판산> 시를 특유의 마오 필체 그대로 써놓았다.

바람이 너무 불고 추웠다. 그래도 류판산의 옛길이 잘 보일 것 같아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헤치고 간신히 걸어 건물 끝으로 가 밑을 바라봤다. 그러자 마오가 류판산 꼭대기에서 보았을 산의 모습과 굽이굽이 길이 나타났다. 추위에 떨면서 그의 <류판산> 을 읊기 시작했다.

하늘은 높디높고 구름조차 맑은데 天高云淡

남으로 줄지어 나르는 기러기, 시리도록 바라본다 望断南飞雁

장성에 이르지 못한다면 누가 대장부라 부르랴 不到長城非好汉

지나온 길을 헤어보니, 어느덧 이 만 리 屈指行程二萬

육반산 고개 마루 위에서 六盘山高峰

홍기는 서풍 받아 힘차게 펄럭인다 紅旗漫卷西風

말고삐를 움켜쥐고 먼 길을 걷는 오늘 今日长缨在手

타고 온 저 말, 매어둘 날이 언제일까 何时缚住苍龙

서강대 정외과 교수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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