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에서 삼권분립이란 말은 행정, 입법, 사법 세 개의 권력을 분리한다기 보다는 이들을 분립함으로써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미국 헌법의 내용을 예로 들자면,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커지는 것을 염려해 이를 견제하는 입법부가 있고, 입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사법부가 있다.
사법부의 판사는 행정부에서 임명을 추천하고, 그 임명을 인준하는 권리는 입법부에 있다. 입법부에서 통과된 법안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거부(veto) 할 권리가 있고,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이라도 입법부는 3분의2의 찬성투표로 다시 통과시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통과된 법이라도 사법부가 위헌판정을 내리면 무효화 된다. 입법부는 판사 뿐아니라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다. 국회의원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행정부 소속인 검찰이 수사할 수 있고, 다시 재판에 부쳐 사법부에서 유무죄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유죄 판결이 나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대통령이라고 해서 장, 차관을 마음대로 임명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지명을 해도 국회에서 인준을 받지 못하면 정식으로 임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견제와 균형의 취지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를 들면 1991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이었다.
그 해에 부시 대통령은 화려한 경력의 판사인 보크 (Bork)를 미 연방 대법원 판사로 지명했지만 보크는 강경 보수파란 이유로 다수당인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대법원 판사가 되지 못했다.
이후 1997년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계 존 리(John Lee)를 인종 문제 국장 (차관보)에 추천했지만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은 존 리가 너무 진보적이란 이유로 인준을 반대한 경우가 있었다.
국무장관이나 국방장관 같은 요직은 TV로 생중계되는 인준 청문회 시청률이 무척 높다. 미국 근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았던 청문회가 클라렌스 토머스 (Clarence Thomas)의 연방 대법원 판사 인준 과정일 것이다.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대법원 판사로 지명됐을 당시 토머스는 백인을 부인으로 둔 보수적인 흑인 연방 고등법원 판사 (한국으로는 헌법재판소 판사) 였다.
그런데 역시 흑인으로 브랜다이스대학 법과대학 교수인 애니타 힐 (Anita Hill) 이라는 예일대 법대 출신 여성이 토머스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1991년 10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 간 미국 전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 공청회에서는 상원 법사위원들의 질문이 걸작이었다.
“강제로 침대에 끌려갔습니까?” “아니오”, “강제로 키스를 요구 받았습니까?” “아니오”, “그러면 강제로 몸이나 가슴을 더듬었습니까?” “아니오”, 결국 전부 남자 의원들로만 구성된 법사위원들이 화를 벌컥 내며 “그럼 뭘 어떻게 했길래 성희롱을 당했다는 말입니까?” 라고 되물었을 때, 수백만 명의 미국 시청자들은 숨을 죽이고 답변을 기다렸다.
애니타 힐의 답변은 “토머스 변호사와 한 사무실에서 일할 때, 그는 내게 자기 성기의 길이가 6인치나 되고 두께가 자그만치 3인치가 될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막힌 진술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손을 잡은 적도 없었고 아무런 육체적 접촉도 없었는데 단지 성기가 크다고 말한 것이 성희롱인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여성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 성희롱이나 하는 저런 저속한 사람이 미국 사법부에서 가장 높은 직책에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 며 공격했다.
이런 신랄한 여성단체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상원 법사위원회는 이 정도는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고 판정해 토머스 씨에 대한 지명을 인준했고, 곧이어 상원 전체회의도 52대 48로 대법원 판사 임명을 인준했다.
이러한 공청회 과정을 방영한 텔레비전이 높은 시청률을 올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미국 여성들이 정치에 적극 참여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다. 여성단체들은 전원 남성인 법사위원들의 사표를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이것이 동기가 돼 여성단체들이 합심해 “우리도 국회에 여자들을 많이 보내자”는 운동을 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 해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들이 당선된 여성 정치참여의 해가 되었다.
내가 있었던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연방 상원의원 두 자리에 모두 여성이 당선됐고, 미 전역 여기저기서 여성들이 주지사와 시장 자리에 당선됨으로써 여성의 정치참여가 눈에 띄게 활발해진 것이다. 이런 모든 변화는 바로 토머스 연방 대법원 판사 청문회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듬 해인 1992년 의회 선거 때는 여성들의 투표율이 역대 사상 가장 높았다. 덕분에 나도 그 해에 여성들의 표를 많이 얻어 당선됐다. 젊었을 적에 各湄?여성들에게 인기가 꽤 있었던 것 같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보다 서른 살 연하 인턴인 모니카 르윈스키와, 그 것도 백악관 집무 중 오럴섹스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자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는 점이다. 물론 부인인 힐러리 여사가 옆에 바짝 붙어서 남편 클린턴 편을 들어준 것도 큰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대법원 판사나 장, 차관들도 대통령은 오직 임명 추천 권한만 있고 최종 결정은 의회에서 하는 것이 바로 삼권분립 원칙의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한국 같이 장관들이 1년만에 바뀌는 경우는 미국에서는 드물다. 만일 대통령이 장관을 해임하고 싶을 때는 사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국회에서 인준했기 때문에 국회에 해임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을 등한시 했다가 하원에서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 바로 1865년 제 17대 대통령 앤드류 존슨 (Andrew Johnson)이다.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행정부 장, 차관을 의회의 사전동의 없이 파면할 수조차 없는 것은 좀 너무하기도 하지만, 이 것이 바로 미국의 삼권분립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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