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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헌절에 생각하는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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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헌절에 생각하는 소크라테스

입력
2008.07.16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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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헌절이라서 제 법에 대한 감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1980년대 중반까지 양심에 배치되는 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국법이라면 독배라도 마셔야 한다던 소크라테스나, 심장 부근에서 살 한 근을 떼 내기로 한 베니스 상인의 계약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긴 군부 독재 치하에 살면서 제대로 저항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딱 한 번 있습니다. ‘고대(高大) 난입 사건’이 벌어진 1971년, 동생들이 걱정이 돼 서울에 올라가 봤지요. 친동생은 데모하다가 성북경찰서에 갇혀 있고, 외사촌 동생은 지도 교수 연구실에서 독서카드를 정리하다가 남산 수도경비사령부로 끌려가 궁둥이가 너덜너덜 펴지도록 얻어맞았더군요.

그래서, 이러면 10여년 후에 지성의 공백이 오고, 젊은이들은 도시 게릴라로 변할 거라는 칼럼을 썼다가 중앙정보부 분실로 끌려가서 다시는 이런 글을 안 쓰겠다고 각서를 쓴 적이 있지요. 그 뒤부터는 그 때 그 옆방의 신음 소리가 무서워 당국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유적인 시만 써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 법감정은 소크라테스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봉하마을에서 가져간 청와대 DB와, 신문 광고주들을 협박한 사건에 대한 감정만 해도 그렇습니다. 누구든 국가기밀을 반출하는 게 불법이라면 봉하마을도 불법이고, 협박하는 게 불법이라면 네티즌들도 불법일 겁니다.

그런데, 전임 국가원수보고 성남 국가기록원까지 가라는 말이냐고 항의하고, 그 정도를 가지고 출국 금지까지 한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고 검찰청에 욕설을 퍼부어대는 네티즌들의 행동은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에는 ‘김주열’이나 ‘이한열’ 같은 사람은 생길 수 없는 세상입니다. 국가권력이 그러고 싶어도 거리 가득 흔들리는 촛불과, 휴대폰 카메라와, 인터넷이 무서워 자기 또래 데모대에 얻어맞고 우는 전경(戰警)들을 다독이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대통령이 잘못했으면 탄핵안을 발의하고, 헌법에 문제가 있으면 개헌 운동을 전개하고, 법령이 잘못 되어 있으면 헌법 소원을 내야지, 전 국면이 자기만의 ‘헌법’을 고집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갑니다.

아니, 우리의 배는 벌써 7부 능선까지 올라가고 있다는 게 보통 국민들의 판단입니다.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세계 경제가 IMF 2단계 수준인데 쇠고기 문제에만 매달리고, 내 나라 내 국민이 비무장 상태에서 사살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대통령이 자기만의 헌법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평소 소신을 바꿔 남북 대화의 재개를 선언하는 점입니다.

몇 년 전, 교환 교수로 독일에 갔을 때지요. 본(Bonn) 대학 주임교수가 한국 문화는 ‘빨리빨리 컬처(문화)’라고 하더군요. 슬그머니 화가 나, 40년 전까지 세계에서 꼴찌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나라가 10대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려니 그럴 수밖에 있겠느냐고 응답했지요. 그러나 속으로는 우리도 ‘차근차근’ 법대로 행동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지요.

오늘은 제헌절입니다. 총칼로 만든 헌법에서 벗어난 지 20여 년, 우리 모두 그때의 법감정에서 벗어나 법이 잘못되었으면 고치고, 소크라테스처럼 법에 따라 행동하는 첫 번째 날로 삼았으면 합니다. 우리 정도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된 나라에서 전 국민이 자기만의 헌법을 고집하면 남아메리카 어느 나라처럼 될 테니까요.

尹石山 시인ㆍ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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