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을 계기로 청와대의 부실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 정부의 위기대응 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14일 청와대 내부에서는 느슨한 위기대응체계로 인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늑장 보고가 이뤄졌고, 이 때문에 사건 당일 이 대통령이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판단미스를 범하게 됐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대통령도 “이번 사건이 보고되는 데 무려 두 시간 이상 걸린 것은 정부 위기대응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질책했다. 이 대통령이나 참모진 모두 위기대응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관리체계의 허점은 애초부터 예견됐다는 지적이 많다. 참여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이 위기관리센터로 직보를 받은 뒤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단선라인이었는데 현 정부 들어 NSC를 폐지하면서 임시로 구성된 위기정보상황팀(15명)이 기능과 권한, 인력이 대폭 축소된 형태로 현안을 챙기고 있다.
위기상황팀이 대통령 직속에서 대통령실장 산하로 재편되면서 조직의 위상도 낮아졌고 대통령에게 직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여기에 이번 대북 정보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보다는 민간회사인 현대아산 등에 의해 전달됐다는 점도 중대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남북 간 공식 대화창구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 비선(祕線) 라인도 현 정부 들어 거의 붕괴됐다는 증거다. 사건 당일 총격과 질병사망 사이에서 혼선을 빚은 것도 국정원의 취약한 정보력을 원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참여정부에서도 자체 작성한 위기관리 매뉴얼도 현실성이 떨어져 지난해 발생한 아프간 피랍 사태나 태안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수 차례 제기돼 왔다.
때문에 청와대는 차제에 위기상황팀 개선방안을 포함, 각종 사고 시 대응요령을 담은 매뉴얼 마련 등 위기관리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키로 했다. 한 관계자는 “각종 상황을 매뉴얼에 따라 실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상당수 위기상황에 정무적 판단이 요하는 데도 정무수석에게 제대로 보고할 수 없는 현 시스템을 크게 보완하는 등 총체적 위기대응방안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위기관리체계 구축을 주문하고 나섰다. 여야 국회의원 22명으로 구성된 국회 연구모임인 위기관리포럼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사건을 인지한 지 두 시간이 넘어서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진 것은 정부의 위기대응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청와대와 정부부처, 비국가기관 간 위기관리체계를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도 “과거 정부는 위기관리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는데 이 정부는 과거 정부가 만든 시스템과 내용을 모두 부정하면서 출발한 것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재는 어떤 순간에도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는 기본적 철학이 없는 데서 발생한 것”이라면서 “정부의 인력과 시스템을 대폭 보완하면서 각종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짜임새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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