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 미래로 고객을 초대하겠다는 광고문안의 유혹에 넘어가 얼떨결에 ‘MB 747’에 탄 사람들이 뒤늦게 후회하며 탑승 취소를 심각하게 고민한다는 내용을 한 달 전 이 칼럼에 썼다. 항공사 사장과 수하 경영진은 지방의 작은 상업항공사를 운영하며 이룩한 성공신화를 자랑스럽게 내세웠지만, 도덕성과 신뢰성을 결여한 실용을 강조하는 경력만으로는 거대 공익회사를 제대로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얘기였다.
그들의 한계는 고유가 태풍에 휩쓸리자 단박 드러났다. 비행기는 아직 이륙도 못했는데, 기수는 이미 10년 전 과거로 꺾였고, 각종 계기판은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려댄다.
경제팀 유임으로 정책신뢰 상실
승객들은 다시 진지한 고민과 함께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시중에선 이미 ‘7% 성장, 4만달러 소득, 7대 경제대국 진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7% 물가인상, 4% 성장, 7% 실업률’로 추락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넘친다. 어떤 사람은 세 번째 7을 대통령 지지율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예비 항공기 여부도 모르면서 무작정 내리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승객들이 최소한으로 요구한 게 조종술이 의심되는 기장의 교체였는데, 사장은 위기 상황에서 노후한 비행기를 모는 데는 ‘올드보이 조합’이 최고라며 이 요청을 거절했다.
이런 혼란과 갈등을 대변하듯, 지금 우리 경제의 병세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접근은 크게 두 가지로 갈라진다. 정부와 관변세력은 “촛불시위의 장기화가 정치사회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수조원대의 비용을 초래하는 바람에 고유가로 인한 경제 후유증이 한층 커졌다”며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힘을 합쳐 난국을 돌파하자고 말한다.
반면 학계와 시민단체 등 비판세력은 “정부가 유가동향 등 물정을 모른 채 성장을 좇다가 고물가를 부추겨 민생을 망쳐 놓고 촛불에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한다”며 전략보다 강짜가 앞서는 정책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상반되는 견해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는 한 발 물러서서 관찰하는 3자적 관점이 도움이 된다. 특히 본보가 최근 기획 게재한 ‘벼랑 끝 한국경제’ 시리즈에서 주한 외국인 전문가들이 꼬집고 조언한 내용은 새겨들을 만하다. 묘하게도 이들은 한결같이 “지금 한국경제가 위기라면 그것은 상황적 위기라기보다 정책리더십의 위기”라고 말했다.
어떤 이는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는 시스템이 없는 엉망진창(messy) 조직”이라는 극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글로벌 위기에 대응해 국가 경제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가동해야 할 시기에, 국민정서를 괘념치 않는 저급한 실용주의에 집착함으로써 쇠고기 촛불집회가 반정부 연대시위로 변질할 빌미를 주고 정책 이니셔티브를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말 못할 어려운 사정’을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는 문제와 공감하는 해법을 애써 피해갔다. 그 결과 경제정책의 리더십 복원은 요원해졌고 이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에게 날아올 유형ㆍ무형의 비용 청구서만 잔뜩 쌓이게 됐다. 대통령은 180석을 넘는 거대여당의 힘을 과신하는지 모르나, 강 장관 해임건의안까지 들고나온 야당의 태도를 볼 때, 추경예산 등 정부 정책을 뒷받침할 국회의 입법과정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낼 것이 명약관화하다.
엊그제 강 장관은 “실상과 다른 고착된 프레임이나 이미지로 정부 정책을 곡해하는 경우가 많아 수렁에 빠진 듯한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강 장관의 품성과 자질을 잘 아는 이 대통령도 이 같은 하소연에 공감하며 한 번 더 기회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굳이 여론을 거슬러간 대통령의 판단이 맞기 바란다. 반대의 경우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서다.
민생성과 못내면 정권존립 흔들
하지만 왠지 개운찮고 찜찜하다. 대통령의 입에서 소통 통합 합의 눈높이 등의 수사가 쏟아질수록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힘을 받고 정책이 신뢰를 얻으려면 국민과 고유진동수를 맞춰 함께 울리고 떨리는 ‘공명(共鳴ㆍresonance) 현상’을 일으켜야 한다. 실망한 민심이 광장의 촛불에 먼저 공명한다면 정부의 경제횃불은 설 곳이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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