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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서울공화국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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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 서울공화국 민주주의

입력
2008.07.1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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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 한 달 전 이 지면에 쓴 ‘서울의 축복과 저주’라는 칼럼에서 서울의‘한국 민주화 선봉장론’을 소개한 바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서울의 높은 인구 밀집도가 민주화 시위에 유리한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서울의 그런 ‘축복’은 동시에 서울이 한국 민주주의에 ‘저주’가 되는 동전의 양면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축복’은 몇 년 또는 몇 십년 만에 한 번 찾아오지만, ‘저주’는 일상적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 저주의 결과에 ‘서울공화국 민주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보기로 하자.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은 그간 지방의 입장에서 과도한 서울 집중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돼 왔지만, 이젠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고려해 볼 것을 제안한다.

지역정치도 서울의 ‘줄’이 좌우

지난 십수년 간의 세월이 입증하지만,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는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무슨 선거건 지방의 선거 현장을 조금만 관찰해 보면 그 이유는 금방 드러난다. 전국에 걸쳐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이 가장 강조하는 게 무엇인가? 그건 “나 서울에 줄 있다”는 ‘줄 과시론’이거나 “나 서울 가서 살다시피 하련다”는 ‘줄 올인론’이다. 지역에 중앙 예산 끌어오고 사업 유치하는 데에 필요한 줄을 이용하고 만들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그걸 비웃을까? 그렇지 않다. 유권자들은 줄의 필요성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우리가 개탄하는 지역주의 선거라는 것도 그 본질은 서울의 권력 핵심부에 지역의 줄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후보가 서울에 어떤 줄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게 투표의 주요 판단 기준이 되는 선거와 민주주의가 갈 길은 뻔하다. ‘풀뿌리 정신’에 충실할수록 오히려 당선은 어려워진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활발하게 작동해야 할 곳은 지방의 작은 지역이건만, 한국에선 정반대다. 서울이 가장 유리하다. 인터넷마저 기존 서울집중 구조를 그대로 빼박은 탓이다. 인구 1,000만의 대도시가 직접민주주의를 해 보겠다고 들끓는 반면, 정작 ‘풀뿌리 정신’이 충만해야 할 중소지역의 시민들은 직접민주주의를 연고주의로 대체하고 있다.

“싸우면서 닮는다”는 말은 적어도 한국에선 불멸의 진리인 것 같다. 독재정권에 저항했던 민주화세력은 독재정권의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 같지만, 실은 서울 1극 체제식 사고와 행태는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서울 중심으로 뭔가 크게 한 판 벌어져야 ‘민주주의의 희망’을 발견하고, 민주주의가 실종된 지방은 그저 ‘휴식’과 ‘향수’의 용도로만 바라보고 있다.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행정자치부장은 최근에 출간한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에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메이저 시민단체들이 과연 지방분권을 원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풀뿌리 죽이는 ‘토호 민주주의’

“정부와 직접 상대해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지방분권이 제대로 이뤄졌을 경우, 일일이 각 광역 시·도와 시·군·구청을 상대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적인 단체로 행세하면서 백화점식 종합운동을 하는 시민단체는 영향력이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이거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시민운동을 위해 이타적인 헌신을 하는 사람들마저 자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일하려고 한다. 물론 전국 차원에서 큰 걸 이뤄보려는 좋은 뜻이겠지만, ‘풀뿌리’의 현장엔 뜻 있는 사람이 적어 토호세력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토호 민주주의’만 창궐한다. 이젠 서울에서 큰 일을 해보려는 선의가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를 죽이고 있는 역설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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