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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헌법 제정 60년… 이석연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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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헌법 제정 60년… 이석연 법제처장

입력
2008.07.1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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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제정 60주년(17일)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이석연 법제처장은 조속한 개헌론을 설파하고 개헌 시 지방분권 강화, 지역균형발전 등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나 한나라당 등 여권 핵심부가 개헌의 조기 공론화나 지역균형발전론 등에 부정적인데도 이 처장은 법 관련 사항에는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그 점은 재야시절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MBC PD 수첩 수사 등 민감한 정치현안에 대해선 양해를 구하며 말을 아껴 정부 구성원으로서 스스로의 경계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 점은 상당히 달라진 대목이었다.

_올해는 헌법 제정 60주년, 건국 60주년입니다. 재야에서는 헌법 지킴이로, 지금은 법제처장으로 정부에 몸 담고 있는데 헌법 60주년을 평가하신다면.

“60년 헌정사에 9차례 개정되는 동안 사사오입, 삼선개헌 등 부정적인 면은 많이 부각됐지만 긍정적인 면은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948년 7월17일 제정ㆍ공포된 헌법이 채택했던 기본이념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입니다. 두 기본이념은 9차례 개정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도 헌법이 만들어 놓은 국가의 틀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반면 북한은 1948년 9월9일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일당 체제를 헌법으로 채택했고, 그 결과 가장 가난한 국가가 됐습니다. 헌법 60주년을 맞아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로 이룩된 번영이 제대로 평가돼야 하고, 헌법 책에서도 이러한 점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다고 어두운 헌정사를 덮자는 것은 아닙니다.”

_1919년 4월11일 임시정부 설립을 건국으로 하고, 지금은 정부 수립 60주년, 건국 89주년으로 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헌법 전문 첫 구절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건국을 여기까지 소급해야 한다는 견해는 경청할 부분이라 생각하고 학계에서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8월15일보다 헌법을 제정한 제헌절을 건국일이라고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_정치권에서 헌법개정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개헌할 시점이 됐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21년 전 개정된 현행 헌법은 시대적 흐름, 국민적 여망, 사회 흐름을 담아내기에 역부족입니다. 헌법 규범과 헌법 현실이 불일치한 경우가 많습니다. 법제처장이 아니라 헌법전문가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_국민기본권을 강화하는 개헌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하셨는데 어떤 개헌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원래 헌법은 기본권 보장을 담은 장전의 의미입니다. 헌법사는 기본권 강화, 즉 국민이 어떻게 주인의 지위를 확보하는지에 맞춰져 있지만 현실정치의 초점은 권력구조에 맞춰져 있습니다. 과거 9차 개정 동안 국민이 나서서 기본권 보장을 강화하는 개헌을 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물론 개헌 제안권한은 국회와 대통령이 갖지만, 이번 개헌은 국민이 주체가 되고 국회가 끌어주면서 사회단체, 언론도 광범위하게 참여해 정략적 의도를 배제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을 택할 것인지는 국민합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현행 5년 단임제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대통령제를 유지하더라도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_지금 헌법으로는 대통령이 초기 또는 중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5년 단임제에서는 재임 중 공과를 평가할 방법이 없습니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평가할 기회가 박탈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에 맞지 않고 집권세력은 독선과 독주로 흐를 우려가 있습니다.”

_어떤 정권이든 초기의 개헌 논의는 권력누수나 국정 드라이브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중반을 넘어서면 차기권력을 잡으려는 세력이 반대합니다. 적절한 개헌시기는 언제로 봅니까.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항상 시기를 놓칩니다만 개헌을 수단으로 장기 집권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개헌은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시대가 개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_국회나 언론 등 다른 부문은 준비가 돼 있는 것 같은데 정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촛불집회 등 초기에 여러 일들이 생겨 정부로서도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법제처는 비공식적 모임을 갖고 헌법자료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비교헌법 연구차원에서 최근 각국의 헌법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국회나 학계 등에 연구자료로 보급하려 합니다.”

_국민기본권 강화의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시지요.

“생명권 환경권 소비자기본권 등을 명시하는 것입니다. 장애인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가 들어있어야 하고 이들의 기본권도 선언적이 아니라 실효적이 돼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눈물과 한숨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은 진정한 법이 아니라는 윌리엄 더글라스 미 대법관의 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지역균형발전, 지방분권 강화도 명시해야 합니다.”

_지방분권이나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담아야 한다는 얘기는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 성향과 다소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헌법적 가치 입장에서 본 겁니다. 어느 정권에 대해서도 이 가치를 강조했고, 이 정부에서도 껄끄러운 소리를 몇 번 했습니다. 이것이 나가야 할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에 관한 규정도 너무 자세하게 명시돼 있는데 국가의 지나친 관여는 시장경제의 큰 틀과 화합하기 어렵기 때문에 손질해야 합니다.”

_노무현 정부 때 취재지원선진화방안, 신행정수도건설법 등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법제처장으로서 그때 일을 반면교사로 삼을 것은 없습니까.

“노무현 정부만 아니라 그 전부터 헌법정신을 무시한 정략적 행위에는 헌법 소원을 냈습니다. 헌법정신을 무시하면 국민적 정당성을 인정 받을 수 없고 결국 실패합니다. 언제 어느 정권에서도 헌법경시풍조는 안 됩니다. 예컨대 올해 국경일에서 제헌절이 제외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이 2005년 대통령령을 개정, 2008년부터 시행하게 됐죠. 선진민주국가는 헌법제정일을 공휴일로 경축합니다. 특히 제헌절은 국회 행사인데, 행정부가 자의적으로 법을 고쳐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은 헌법경시 풍조의 현저한 예입니다.”

_법제처가 주도적으로 법령정비를 하고 있는 데 개정해야 할 법은 어떤 게 있습니까.

“법률, 시행령, 부칙 등 법제처 심의를 받아 우리 생활을 규율하는 법령이 약 4,500개입니다. 하지만 훈령, 예규, 고시 등 각 부처가 편의상 만든 내부 규정이 1만1,000개도 넓은 의미의 법령입니다. 이번 쇠고기 고시도 마찬가지고요. 이처럼 법령이 생활에 너무 깊숙이 침투했지만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법률을 정비할 시점이 됐고 이것을 시정하기 위해 법제처장을 맡았습니다. 법률만능주의, 행정만능주의에 치우쳐 만들어진 법령을 국민생활과 눈높이에 맞도록 법률을 정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는 법령, 영업활동이나 기업활동에 지장을 주는 법령,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법령을 정비하자는 3가지 방향을 잡았습니다. 물론 안전, 보건, 환경 등은 특히 강화해야 합니다. 국민이 법령에 맞춰 살아야 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_처장께서 쇠고기 고시는 법령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절차 측면 외에 고시 내용도 검역주권과 건강권 침해 등 위헌 요소가 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가축전염병 예방법에 보면 수입위생 조건을 정부가 고시로 공시하기로 돼있습니다. 고시는 내부규정입니다. 쇠고기 문제는 중요하기 때문에 법령의 형식을 띤 대통령령이나 농림부령으로 하면 법제처 심사를 거쳐 공론화가 됩니다. 고시로 하는 것은 헌법상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났습니다. 따라서 위헌입니다. 검역증명서에 첨부되는 수입위생 조건은 농림수산식품부의 부령으로 정한다는 조항이 들어가도록 국회가 입법적으로 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내용적으로는 추가 협상을 통해서 30개월 이상 부분, 검역주권 부분도 보완했기 때문에 위헌은 아니라고 봅니다.”

_추가 협상으로 내용이 변했기 때문에 예고기간을 가졌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 동안 언론을 통해서 추가협상 내용이 충분히 공표됐고, 사회쟁점으로 논의된 만큼 행정예고를 갈음한 것으로 봅니다.”

_이제 현실문제로 돌아가보지요. 촛불집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근 법치주의 훼손의 목소리도 나오고 과잉진압 논란도 있습니다.

“중국의 서경에 ‘일을 직접 하는 자는 갈피를 잡지 못하지만 방관자는 분명하게 깨어있다’고 했습니다. 방관자는 백성을 말합니다. 법적 정치적 판단을 떠나 일을 직접 하면서 정신 못 차리고, 의욕이 앞선 저를 포함한 집권세력에 대해 방관자인 국민이 분명히 깨어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봅니다. 이제 국민들이 정부에 일할 기회를 주고, 1~2년 뒤 평가해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_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에 절실하게 드릴 말씀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시지요.

“통합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로마는 패자도 동화시켰습니다. 또 실패나 실정을 인정하는 순간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정권도 마찬가집니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과도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특정정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전체의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이영성 부국장 겸 정치부장

■ 이석연 법제처장 약력

▦전북 정읍생(54세) ▦전북대 법학과 ▦서울대 법학박사 ▦행정ㆍ사시고시 합격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경제정의실천연합 사무총?▦감사원 부정방지대책위원장 ▦헌법포럼 상임대표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대표

정리=정진황기자 박민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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