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 민주당 조배숙 김상희 의원이 심각하게 회견을 시작했다. 요지는 어청수 경찰청장을 파면하지 않으면 11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때 항의를 표시하겠다는 것이다. 이 요구에는 민주당 의원 48명이 서명했고 이들은 항의의 표현으로 시정연설 중 피켓을 들거나 아예 퇴장하는 방법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어디서 본 듯한 상황이다. 기억을 반추해보니 2003년 4월2일 국회 본회의장이 떠올랐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첫 국정연설을 하기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설 때 민주당 의원들은 기립하여 환영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40여분의 연설 중 단 한차례도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장하면서 청한 악수조차 외면했다. 당시 민주당은 "저급한 정치"라고 비난했고 국민들도 혀를 찼다.
그 때의 아픈 기억을 되갚기 위해서인가. 5년 전 비난했던 행위를 민주당이 재연하려 하고 있다. 물론 항변은 있다. 그 때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품격을 문제삼아 무례를 범했지만 민주당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려한 어 청장을 파면시켜야 하는 명분이 있다고.
그러나 세상사에는 상당성이 있어야 한다. 오물 한 바가지가 저수지에 들어왔다고 수문을 전부 열 수는 없다. 5년 전 국정연설이나 지금의 시정연설이나 모두 국가원수가 앞으로 나라를 어떻게 끌고 나가겠다고 밝히는 자리다. 의원들의 감정적 호불호나 경찰청장의 거취와 거래를 하는 자리는 아닌 것이다.
5년 전 한나라당은 분명 잘못했다. 그렇다고 지금 민주당이 시정연설을 망치는 무례를 범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 이제 정치의 저질스러운 악순환은 끊자.
진실희 정치부기자 truth@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