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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음이 주인 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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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음이 주인 되는 그림

입력
2008.07.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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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꽃과 화병과 과일 정물을 그려보라고 하였다. 그야 말로 겁 없이, 별다른 고민 없이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꽃잎은 닮음과 상관없이 그저 자기만의 꽃으로 상징화되며, 원통형 꽃병 역시 삐뚤어진 직사각형이기 일쑤다. 과일의 채색이며 크기까지 역시 보이는 것과 상관없을 때가 많다. 그래도 아이의 그림은 표정이 명확하며 거침이 없고 자유롭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의 그림 학습을 위해 자주 애용하는 것은 색칠하기이다. 아이들이 동물들에게 카멜레온처럼 여러 색을 입히고, 즐겨 먹는 과일을 엉뚱하게 채색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사람을 표현하는 부분에 가면 부모들은 대개 참을성을 잃는다. “머리는 까만 색이고 얼굴은 살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색과 피부색은 인종에 따른 차이도 있거니와 염색과 화장에 의해서도 바뀐다. 살색이 “연주황”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지도 오래 되었다. 더 이상 ‘살색’이라는 기존 지식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일곱 살이 된 딸아이의 그림에서, 빨간색 하늘은 노을 지는 하늘이고, 까만 색 바다는 무서운 바다이고, 파란 얼굴 여자아이는 얼음나라에서 온 친구이다. 얼굴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데 목이 없는 것은 고개를 숙여서 목이 보이지 않는 것이며, 그리기 어려운 손가락이 동그랗게 된 것은 주먹을 쥐고 있는 거라는. 아이의 심각한 얼굴을 보면, 웃음과 함께 아이의 머리가 커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은 그렇게 조금씩 자기만의 생각을 갖게 되는 일이다.

어린 아이들이 많이 쓰는 색깔은 빨강, 노랑, 파랑과 같은 원색이만, 취학을 하면서 유독 빨간 색만은 아이들의 선호색에서 많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빨간 색은 공산당, 전쟁, 불조심, 피 등과 같이 두렵고 불안감을 주는 색이라고 배웠다. 이제 공산당이라는 단어는 교과서의 색채심리 용어에서 빠졌고, 월드컵의 붉은 악마 덕에 빨간 색 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빨간 색은 경계의 색으로 선호색에서 많이 제외되고 있는 편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사오십 대 이후 나이가 들면서 빨간 색은 다시 선호색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여성 의류 매장에서 숙녀복 코너와 중년층 코너를 구분할 때, 중간색이 많은 숙녀 코너에 비해, 중년 층 코너는 빨간 색을 비롯하여 울긋불긋 화려한 원색의 조화가 눈에 띄어 쉽게 구별이 될 정도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찾게 되는 마음의 색. 배워서 익힌 상식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는 노년이 되면 빨간 색은 우리마음 속 제자리를 찾아가는 셈이리라.

이렇듯 5~6세를 벗어나 취학과 함께 사람들은 어느덧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가 아닌 지식과 상식을 그리기 시작한다. 형태뿐 아니라 색깔까지도 그렇게 배움을 닮아 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림은 상식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그리는 것이다. 차가워진 이성으로 가득 채운 머리가 아닌 마음을 느낌을 그리는 것일 테다.

그래서 화가인 나는 어린 딸아이의 낙서나 그림 속의 천진난만한 선을 가끔은 학습까지 한다. 내가 기억해 내지 못하는 유년의 시선과 감성을 끄집어내기 위해 아이의 그림을 보는 것이다.

이제 방학이 시작된다. 아이들이 그림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부모가 있다면, 정형에 얽매이지 말고, 그냥 그림을 즐기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최근 많이 전시되고 있는 현대 미술전들을 참고해 보자. 어디 정형이 있는가? 아이들의 마음이 주인이 되는 그림을 그리게 하자.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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