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구나무를 선 소녀가 아주 느릿한 움직임으로 평행봉 위를 걷듯 선반 위를 오간다. 선홍빛 조명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몽환적인 음악에 칼을 든 소녀는 춤추듯 몸을 가눈다. 돼지 시체가 일렬횡대로 나란히 걸린 평범한 정육점의 일상은 어느 새 꿈에서 본 듯 아름다운 환상이 된다.
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아시아 초연 무대를 가진 아트 서커스 <네비아> 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화려한 기술도 웅장한 무대 장치도 없지만 조명과 음악, 집중력이 돋보인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켰다. 네비아>
이탈리어로 안개의 뜻을 지닌 <네비아> 는 서커스라기보다 옴니버스 무용극에 가까웠다. 주인공 곤잘로가 안개 속에서 우연히 만난 추억의 단면과 사람들을 표현한 내용이라지만 각 장면 사이의 개연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공중그네, 천 퍼포먼스, 링 퍼포먼스 등 약 7,8분 길이의 테마가 있는 독립된 서커스 동작을 배우들의 만담으로 연결하는 형식이다. 네비아>
매 장면이 정지된 한 장의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연출가 다니엘 핀지 파스카의 구도와 색채 감각은 뛰어났다. 물론 과장된 분장이나 의상 없이도 인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역량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된 덕분이다.
서커스라는 단어에 떠올릴 광경이 누구나 다르듯 공연에 대한 반응은 엇갈릴 듯하다. 전체적인 인상이 동작의 난이도보다 음악과 조명에서 오는 경향이 커 마술 같은 진기한 묘기를 연상하는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장르를 서커스로 보든 ‘아크로바틱 연극’으로 분류하든 한번쯤 체험해 볼 만한 신선한 공연인 것만은 틀림없다. 관람의 팁 하나. 배우들에게 격려의 뜻을 전하고 싶다면 흰 손수건을 준비해 갈 것. 공연은 20일까지. 1577-5266
김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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