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공원에 가면 ‘귀신의 집’이란 게 하나씩 있다. 나와서 생각하면 조악하기 그지없지만 적어도 그 속에 있는 동안은 꽤 무섭다. 살갗으로 느껴지는 현장감 때문이다.
캄캄한 바닥에서 손목이 쑥 튀어나와 턱 발목을 잡으면, 비록 그게 시급 4,000원짜리 아르바이트생의 손목이라는 사실을 잘 알더라도, 자지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물컹’하는 단세포적 촉감이 인간 공포심의 본질이다.
스페인 영화 <알이씨(rec)> 는 공포의 그러한 촉감을 담고 있다. 영화는 현장감을 위해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다. <블레어워치> (1999)와 <클로버필드> (2008) 등을 통해 선보인 적 있는 기법이지만 여전히 신선하다. 클로버필드> 블레어워치> 알이씨(rec)>
배우들의 대사는 정제돼 있지 않고 전개는 툭툭 끊기며, 카메라는 관객이 현기증을 느낄 때까지 흔들린다. 상영시간 내내 연출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편집되지 않은 TV 다큐멘터리의 촬영본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리얼 다큐멘터리 ‘당신이 잠든 사이’의 리포터 안젤라(마누엘라 벨라스코)는 카메라맨과 함께 소방관들의 밤샘 구조 현장에 동행한다. 구조팀이 도착한 곳은 발작을 일으킨 노파가 살고 있는 아파트.
구조팀은 아파트 주민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기괴한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웬일인지 경찰은 구조팀을 가둔 채 아파트를 바깥세계로부터 격리해 버린다. 특종거리를 잡았다고 흥분하던 안젤라도 결국은 공포 속에 전율하며 이성을 잃어간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는 압력과 카메라에 튄 피를 닦지 못한 채 진행되는 입체적 현장감은, 비교적 적은 예산이 든 영화에 엄청나게 빠른 심장 박동을 심어 넣는다.
공포감은 척추의 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되기 전, 이미 피부와 호흡을 통해 관객에게 흡수된다. 무섭고, 동시에 무척 흥미로운 영화다. 감독 파코 플라자. 개봉 10일. 청소년관람불가.
유상호 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