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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신화' 템플턴 타계/ 기부·검소한 생활로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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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신화' 템플턴 타계/ 기부·검소한 생활로 존경

입력
2008.07.10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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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월가의 신화적인 투자자이자 자선가로 유명한 존 탬플턴 경이 8일 바하마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숨졌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향년 95세.

1912년 미 테네시에서 태어난 템플턴은 예일대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을 갔다. 경영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그 당시 경영학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쓰레기 취급을 받는 학문’이어서 대신 법학을 전공했다.

30년대 후반 월가에 입성한 템플턴은 2차대전 후 투자한 104개 회사의 주식 중 100개 회사에서 수익을 올리면서 탁월한 투자 솜씨를 인정받았다.

미국인들이 해외투자에 관심이 없던 50년대 자신의 이름을 딴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만들어 히타치(日立)와 후지(富士)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회사에 투자, 큰 이익을 챙겼다.

80년대 그의 주식 중 일부는 매입가보다 68배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했다. 머니 매거진은 99년 그를 “금세기 최고의 주식투자가”라고 평했다.

그의 투자원칙은 단순했다. ‘남들이 사면 팔고, 남들이 팔면 사는 것이다.’ 그는 시장의 원리와 반대로 투자하는 전략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려는 차원이라고 농담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팔려고 하면 그들을 도와서 주식을 사주고 다른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사려고 하면 그들을 도와 사주면 되는 거죠.”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던 98년에도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했다.

템플턴은 독실한 장로교 신자여서 그의 뮤추얼펀드 연례 미팅은 항상 기도로 시작할 정도였다. 환자에게 미치는 기도의 치유 효과를 연구하는 하버드대 의대 등을 후원하는 템플턴 재단에 15억달러를 기부했고, 72년에는 인류애와 종교적 성취가 탁월한 개인에게 주는 템플턴 상을 만들었다. 이 상의 상금은 노벨상보다 항상 높게 책정된다.

그 상의 첫 번째 수상자는 테레사 수녀였고 이어 미국의 빌리 그래험 목사, 구 소련 반체제 인사 알렉산더 솔제니친 등이 상을 받았다. 87년 그는 사회공헌에 대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게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

템플턴은 60년대 미국 시민권을 반납하고 소득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바하마로 이주했다. 약 10억달러에 달하는 재산이 있었지만 그의 삶은 상대적으로 검소했다고 지인들은 전하고 있다.

다른 바하마 사람들이 좋아하는 골프나 요트도 그의 관심 밖이었다. 템플턴은 생전에 “내 이웃들은 골프를 치고 요트를 타러 가지만 나는 그것들이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인 둘과 사별했으며 두 아들이 있다.

차예지 기자 nextw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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