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셜록 홈스를 쓴 추리작가 코난 도일. 그는 자신의 분신인 홈스와 왓슨을 통해 냉철한 판단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실수를 저질렀다.
도일은 당시 생소한 종목의 마라톤 심판이었다. 이탈리아 마라토너 도란도 피에트리는 2시간 54분 46초 만에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피에트리는 마지막 400m 가량을 10분 동안 뛸 정도로 기진맥진했다. 땅에 쓰러지기만 세 차례. 곁에서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도일은 비틀거리는 피에트리의 손을 붙잡아 결승선까지 인도했다.
피에트리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기절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2위는 피에트리보다 30초 늦게 도착한 미국의 조니 헤이스. 미국이 심판의 도움을 받은 피에트리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항의했고 올림픽조직위원회는 결국 피에트리를 실격 처리했다. 피에트리는 영국 신사 도일의 ‘과잉’ 친절 때문에 금메달을 반납해야만 했다.
이탈리아 관계자는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냐”며 심판진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해외 언론은 ‘신사의 나라 영국이 보여준 위선’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알렉산드라 영국 여왕은 “영국에서 나쁜 기억만 가진 채 귀국하지 않길 바란다”고 사과한 뒤 피에트리에게 금으로 만든 컵을 선물했다.
당시 마라톤 출발점에서 결승선까지는 40.2336㎞(25마일). 그러나 윈저궁 안에서 마라톤 경주를 볼 수 있도록 출발점을 궁전 쪽으로 1마일 늘렸다.
게다가 공주가 보는 앞에서 경주를 끝내고자 트랙에서 385야드(약 352m) 더 달리도록 했다. 영국 왕실의 입김만 없었더라도 피에트리는 심판의 도움 없이 금메달을 차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려운 일을 척척 해결하는 홈스와 달리 어설픈 동정심으로 구설에 오른 도일. 그리고 올림픽 역사상 가장 운이 나쁜 선수인 피에트리는 생소한 경기였던 마라톤을 전세계에 널리 알린 마라톤 전도사였다.
이상준 기자 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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