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와 물가 급등이 초래한 실물경제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고스란히 넘어오고 있다. 최근 2~3년간 은행권의 대출 경쟁으로 급증한 가계ㆍ중소기업 대출이 집단 부실화하며 금융불안으로 연결될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실물경제의 침체를 겪고 있다면, 국내에서는 그 반대의 악순환이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연체율 상승에 따른 은행권의 건전성 악화도 문제지만, 중소기업과 가정 또한 높아 가는 이자 부담에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물가 안정과 금융사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을 옥죄기로 했지만, 위기의 악순환에서 빠져 나올 해법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 건전성 경고등
은행들은 2006년 이후 대출을 매년 14% 이상 늘려왔다. 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면서 중소기업ㆍ자영업 대출 확대 등을 통해 외형을 키우려는 전략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실물 경제가 급속히 위축되면서 급증한 대출이 오히려 리스크 요인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은행권의 연체율은 5월 기준 1.04%(잠정치)로 높아졌다. 지난해 말 연체율 0.74%와 비교하면 50% 가까이 치솟은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1.0%에서 올해 5월 1.5%로 급등했다. 5월 기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하나은행이 1.61%, 신한은행 1.25%, 우리은행 1.02% 등이다.
국내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지난해 말 12.28%에서 올해 3월 말 11.96%로 떨어졌다. 또 3월 말 부실채권 비율도 지난해 말보다 0.06%포인트 상승한 0.78%을 기록하는 등 거의 모든 건전성 지표가 하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은행권이 올해 하반기 경영계획을 세우며 외형 확대보다 건전성 관리에 초점을 맞춘 것도 이런 심상찮은 조짐을 의식한 것이다.
■ 대출 부담도 커져
은행들의 건전성과 수익성 악화는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불황에 허덕이는 중소기업과 가계를 더욱 압박하고 있다.
5월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금리(신규대출 기준)는 7.14%로 전달보다 0.05%포인트나 올랐다. 각종 채권금리가 급등하면서 은행들의 대출금리와 연관된 은행채 금리는 4일 기준 연 6.70%로, 3개월 전인 4월 30일의 5.47%에 비해 1.23%포인트나 치솟았다. 이에 따라 은행채를 기준금리로 하는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금리 상한선이 9%를 넘어섰으며, 신용대출 금리도 상승세에 있다.
이자가 오르면서 가계의 금융부채도 지난해 말 631조원에서 올해 3월 말 640조원으로 불어나, 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50% 가량으로 치솟았다. 특히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비율은 164%에 달했다.
■ 해법은
당장 실물경기 둔화 → 중소기업ㆍ가계 연체율 상승 → 금융권 건전성 악화 → 대출금리 상승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일단 물가 안정을 위한 대출 억제와 금융권 건전성 점검에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지금으로선 성장보다 물가문제가 훨씬 급하고 심각한 만큼, 물가 상승의 원인 중 하나인 과잉 유동성을 축소해나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 상황에서 대출 억제는 실물경제 몰락을 더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의 대출을 줄이는 것은 사회적 죄악”이라며 “직접적으로 대출을 줄이도록 하거나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을 높일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금융권의 건전성을 강화하겠다고 대비도 없이 충격요법을 쓰면 중소기업 등 취약 부분은 즉시 신용경색 등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대출 옥죄기 등의 충격요법 보다는 통화관리를 타이트하게 가져간다는 시그널을 주는 방식이 낫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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