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위기상황을 촉발하고 있는 한국 언론 전반의 실태를 분석,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키 위해 언론학자들이 모여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에 참여한 서울대 양승목 교수, 연세대 윤영철 교수, 이화여대 이재경 교수(가나다순)는 중도적 시각을 갖춘 대표적인 중견 언론학자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 언론이 특정 이념과 시각에 지나치게 매몰돼 스스로의 위기와, 나아가 국가 사회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며 “이제라도 제도권 미디어가 제 자리를 잡고 사회의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일보 이준희 편집국장이 좌담 진행을 도왔다.
■ 진행= 이준희 편집국장
- 현 시국과 관련해 한국 저널리즘의 고질적 문제들이 극명하게 표출되고 있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재경(이하 이) = 좀 다른 얘기부터 하자. BBK사건의 김경준이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이 한 말이 모두 거짓말이었다고 최근 말한 바 있다. 그걸로 끝이다. 정확한 스토리는 묻혀버린 상태다. 한국 저널리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현상이다. 누가 뭐라고 하면 일단 쓴다. 그리고 그걸로 온 나라가 뒤집어 진다. 진실을 알기 위한 시도나 노력도 없었고, 과거로 돌아가 되짚어보거나 반성하는 보도 또한 없다. 이번 광우병 쇠고기 사태도 마찬가지다.
MBC PD수첩은 굉장히 위험하게 결론을 도출해 끌고 갔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어느 언론에서도 실제 미국에서 소비하는 소와 우리가 먹는 소가 다른 것인지, 미국산 소가 정말로 얼마나 위험한지 등 문제를 촉발시킨 핵심 사안들에 대한 분명한 검증은 없다. 그냥 서로가 싸우고 있을 뿐이다.
▦양승목(이하 양) = ‘외눈박이 저널리즘’에다 ‘냄비 저널리즘’이다. 외눈 저널리즘은 이념의 포로가 되어 세계를 한쪽 눈으로 보는 것이다. 조ㆍ중ㆍ동 등 보수언론을 보는 독자와 한겨레ㆍ경향 등 진보언론을 보는 독자들이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언론들이 자신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것은 최근의 문제만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때로는 종속변수로, 때로는 독립변수로 정치 사회적 갈등을 더 격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불같이 달려들었다가 다른 사건이 터지면 바로 조용해지는 냄비 저널리즘도 문제다. 학문적으로는 전형적인 선정주의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팩트(fact)에 기반한 분석 없이 다들 그저 쏟아지는 정보만을 전달할 뿐이다.
▦윤영철(이하 윤) = 보수 진보 간의 이념적 갈등에 따라 언론도 지극히 정파적으로 변했다. 중간지대에 있어야 할 방송매체, 인터넷매체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독자 입장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견해도 존중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하는 매체가 드물다. 때문에 독자들은 자기의 생각에 맞는 매체만을 찾아보게 되는 편식현상이 생겼다. 언론매체들의 이중기준도 심각하다.
예를 들어 인터넷 내용에 대한 평가에서도 “왜곡이 심하다” “새로운 표현의 방법이다”라는 식으로 번번이 입맛에 따라 기준과 시각이 갈린다. 이런 식으로 중간지대가 취약하기 때문에 갈등이 점점 심화하고 있다. 소통을 해줘야 할 언론 매체가 오히려 소통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다.
- 실제로 어떤 부분이 저널리즘의 본령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윤 = 각 매체마다 자기 논조에 맞는 정보를 발견하면 사실인지 확인도 않고 의견을 강화하는 소재만 다룬다. 진보나 보수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그저 의견만 과잉일 뿐, 저널리즘의 기본인 사실에 입각한 확인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인터넷과 무관하지 않다. 인터넷 영역이 확장되면서 신문과 방송이 인터넷이 관심을 끄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방송, 신문, 인터넷이 모두 상업주의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에서 저널리즘의 질은 동반하락 할 수밖에 없다.
▦양 = PD수첩 논란 중의 하나 역시 여러 팩트 중에 제작진의 의도에 맞는 것만 추리거나 왜곡했다는 점이다. 이는 쇠고기 사태를 보도하는 전체 언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두 자기가 가진 관점과 생각에 맞는 팩트만 선별, 채용하고 있다. 독자나 국민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듣거나 객관적 데이터를 알게 된다면 서로 생각도 교정하고 합의점을 찾아나갈 수 있겠지만 현재의 보도행태는 이런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있다. 독자들이 학습의 기회가 없으니까 주장만 외치는 상황이 됐다.
언론의 사회적 기능 중 하나가 조정 기능이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가는 능력인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현재 우리의 언론은 낙제점이다.
▦이 = 정치와 언론과의 관계에서 왜곡된 시스템이 고착화해 있다. 신문들이 이념 전장의 말단 조직처럼 돼버린 꼴이다. 정당 대변인과 신문의 논조가 같은 것도 그런 현상의 하나다. 이 같은 언론상황 속에서는 진보와 보수, 혹은 찬성과 반대 등 모든 사안이 다 양극화 돼 버린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기 힘들다 보니 강성기조만 남아있는 구조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좌나 우가 아니라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진상이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으면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졸업생인 현직 기자한테서 “취재하러 나설 때 이미 스스로 어느 편인지 생각한다”고 간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태도가 훈련이 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양 = 현실의 복잡성을 담아서 보여주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촛불집회에 우호적인 모 방송사의 기자가 대책회의 관계자를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시청 앞을 꽉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쫙 갈라지며 길을 터주더라고 했다. 그는 그걸 보고 “‘모세의 기적’같다”는 표현을 썼는데 반드시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현상이다. 그만큼 매체에 대한 인식이 심각하게 고착화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이번 쇠고기, 촛불 갈등이 언론에 의해 키워진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양 = 꼭 그렇게는 보지 않는다. 대책 없이 현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사태를 키웠다고 하기보다는 초래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이 강하게 비판을 제기했지만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인 쇠고기 협상 문제에 대해서는 PD수첩이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이전에 다른 어떤 언론도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결국 이 때문에 사태가 협상의 정당성이 아니라 엉뚱하게 쇠고기 안정성 문제로 출발했다. 외교는 국익과 관련된 것인 만큼 처음부터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했다. 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서부터 감정으로 치우쳤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합리성이 아니라 이미지와 감성이 지배했고, 여기서 언론이 양극화됐다. 당초부터 우리 언론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초래된 것이다.
▦이 = 관련된 얘기지만 차제에 우리 언론의 취재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취재를 편하게 하는 시스템에 다들 익숙해 있다는 말이다. 그저 대변인 발표, 보도자료 등을 옮기는 데만 머물러 있을 뿐, 사안의 이면을 캐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문제와 관련해서는 특파원들도 마찬가지다. PD수첩 방영 이후에라도 미국 현지에서 직접 검증과 심층취재를 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밖에서 보자면 사실에 대한 검증 없이 입장만 갖고 대립하는 대한민국이 이상한 나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다.
- 사실 외국 언론도 보수와 진보 각자의 입장을 갖지 않느냔. 우리만 특히 문제랄 것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윤 =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대단히 특별한 현상이다. 외국의 경우는 무엇보다 다양성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 외국언론의 경우 상업화가 진행될수록 ▲이념성 약화 ▲중간지대 독자층 증가 ▲팩트 중심의 기사 증가 ▲정치성 약화 등의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우리는 87년 이후 급속도로 나타난 정치적인 양극화 구도가 언론에 그대로 고착화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말하자면 정치적 요인이 언론시장의 요인을 압도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 선진국은 언론에서 이념성의 공간이 따로 돼 있다. 오피니언(주장)에 어느 정도의 이념성이 개입돼 있는 점은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스트레이트(사실보도 기사) 속에 깔려있는 이념이다. 우리의 현실은 공정하고 정확하게 사실을 전달해야 하는 스트레이트 기사조차에도 이념과 방향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런 입장에 따라 제목들이 뽑히다 보니 그것들도 너무 무섭고 과격하다. 이런 선정주의가 한국 신문의 후진성이다.
▦양 = 기자가 어떤 색깔과 이념, 관점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신문의 경향성과 색깔은 불가피하고, 또 어느 정도는 있어야만 하는 사정도 있다. 다만 우리의 경우에는 누차 지적하지만 중간지대의 목소리가 없거나 크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기자가 취재 과정, 보도 과정에서 자기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그것이 기자의 당연한 직업 정신인데, 그런 것부터 부족하다. 지금 한국 저널리즘의 모습은 ‘홍보’와 별로 다른 점이 없다.
▦이 = 매체들에 대한 신뢰도와 존경심이 소멸돼가고 있음을 두렵게 여겨야 한다. 인터넷 글쓰기, 블로거 등 개인 저널리즘의 논객들이 하는 방식이 그대로 기존 제도권 저널리즘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다. 기자는 없고 논객만 있는 상황이다. 언론이 인터넷을 끌고 가야 풔쨉? 반대로 인터넷을 학습하면서 표현의 영역은 넓어졌지만 진짜 저널리즘의 공간은 축소돼가고 있다. 또한 정치권과 인재를 교환하는 시스템이 상시화해 있는 등 언론이 정치권과 지나치게 유착돼 있는 것도 우리 만의 특수한 현상이다.
- 결론적으로 한국 언론이 지향해야 할 ‘좋은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나아가 현 갈등의 해소방안은 무엇인가.
▦양 = 한국 언론 전체가 위기 상황임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신문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는 계속 하락할 것이다. 신문 모두가 공멸하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계가 공동으로 신문의 신뢰도를 높이고 질을 높이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촛불시위로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긍정적 평가가 있지만 어쨌든 현 상태는 과잉이다. 빨리 국회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직접민주주의가 가미된 형태가 바람직하다. 직접민주주의가 중심이 되면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디어 상황에서 보면 인터넷이 나름 의미도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거짓 정보가 활개를 치고 소수가 여론을 지배하는 위험이 있다.
역시 저널리즘의 중심은 제도권 미디어가 돼야 한다. 지금 국회가 식물처럼 돼 있는 것처럼 제도권 미디어 역시 그런 점에서 비슷한 상황이다.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인터넷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위기감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한 발자국씩 물러서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윤 = 과거에는 좋은 저널리즘에 대해 합의된 가치가 있었는데 그것이 깨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널리즘의 원칙에서는 ‘어떤 팩트가 사태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가’가 중요한 뉴스의 가치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은 기자나 언론사가 판단하고, 어떤 팩트가 내 판단을 선명하게 드러내는가를 생각한다.
이것이 저널리즘이 깨지는 현상이다. 독자가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이 아예 없는 인터넷도 문제다. 저널리즘의 기본으로 제도권 미디어가 돌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회 통합의 핵심미디어인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이 = 우선 기자들이 기본적으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기사에서 서술어가 지나치게 다양하게 쓰이는 것도 현 언론의 왜곡된 실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의 하나다. 서술어를 선택해서 처음부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을 치장하지 말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겸허한 자세가 중요하다. 진실은 모르는 데 너무 많이 아는 것처럼 전달한다. 취재 모드의 전환부터 필요하다. 외국의 언론이 지면에 대해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독자와 교류하는 노력도 참고해 볼만 할 것이다.
- 그런 점에서 한국일보는 내부에서 다양한 견해가 소통되고, 심지어 격론이 벌어지기도 하는 유일한 신문사다.
▦양 = 현재처럼 모두가 이념적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한국일보는 지금까지 지켜온 불편부당의 입장에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대립이 격화되다 보면 반드시 건강한 중도를 지향하는 시기가 온다.
▦윤 = 격론이 많다는 것은 생각이 다른 구성원이 많다는 의미다. 자율적으로 교정이 가능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일보의 강점이다. 차제에 한국일보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독자들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할 만 하겠다.
김종한 기자 사진= 홍인기기자 hongik@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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