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독일 중부 소도시 뷔르츠부르크에서 베티나 샤르트(79)라는 독신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성분이 담긴 음료를 마신 후 수분만에 사망했다.
비디오를 통해 공개된 그녀의 자살 사유는 “요양원으로 이송되는 게 죽기보다 싫다”는 것.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노인이 거동이 불편해지면 요양원으로 보내지도록 규정된 독일의 복지 시스템이 끔찍했던 것이다.
신문 가십 거리에 불과할 수 있는 이 여성의 자살이 요즘 독일에서 앙겔 메르켈 총리까지 가세하는 안락사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다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 등이 보도했다. 이 여성이 자살에 이르는 과정에서 로저 쿠쉬(51) 박사라는 안락사 옹호론자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내과 전문의인 쿠쉬 박사는 샤르트의 의뢰를 받고 말라리아 치료 성분인 클로로퀸을 배합해 인체에 치명적인 음료를 만드는 방법을 조언했다. 그렇지만 음료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에 독일의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독일의 연방법에 따르면 안락사를 주도하는 것은 위법이지만 소극적으로 자살을 돕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쿠쉬 박사가 1일 기자회견을 갖고 “현재의 연방법 테두리에서도 안락사가 가능하다는 게 증명됐다”며 죽음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샤르트가 자살 직전 촬영한 비디오에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죽음으로써 마지막 목표인 자유를 성취했다”고 말하는 장면도 방영됐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샤르트가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한 것이다.
독일인들은 이 사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간지 빌트는 사설에서 쿠쉬 박사를 ‘130여명을 안락사시킨 미국인 의사 잭 케보키언의 독일판’이라고 비난했고, 외르그 호페 독일의사협회장은 “구역질 나고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자살을 돕는 행위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관련 법 개정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일간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IHT)는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유대인 수백만명을 죽음으로 내몬 이후 독일 사회에서 안락사 논의 자체가 드물었다”며 “안락사 논쟁이 독일에서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