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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독고다이

입력
2008.07.04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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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지음/랜덤하우스코리아 발행ㆍ312쪽ㆍ1만원

200자 원고지 세 장 반 분량, 손바닥만한 지면을 차지하는 글로 소설가 이기호(36ㆍ사진)씨는 독자의 희로애락을 능란히 요리한다. 그 감동의 연원을,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입담을 지녔다는 이 젊은 작가의 글재주 때문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의 글이 머리와 손이 아닌, 생활세계를 성실히 감당하는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라 보는 게 옳을 듯하다.

이 책은 이씨가 (지금은 김종광씨가 맡고 있는)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 코너에 2007~2008년 13개월 남짓 연재한 글을 추려 묶은 것이다. 연재 기간 중 이씨는 전셋집에서 첫 아이를 낳아 길렀고, 독서실에 앉아 소설을 썼고, 생계를 위해 몇몇 대학에서 창작 강의를 했다. 갈바람에 싱숭생숭해져 “아내한텐 독서실을 간다며 집을 나섰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자유로를 달리고 있”(‘화석정’)는 일이 종종 있었고, 명절이나 제사 때면 어김없이 고향 원주로 가는 도로를 탔다. 가난한 소설가, 서투른 초보 아빠, 연로한 부모님을 걱정하는 아들로 보낸 30대의 한때가 말랑하면서도 탱탱한, 유머와 페이소스가 겸비된 190여 편의 글에 녹아있다.

제목대로 ‘분만실 앞’에서 쓰여진 글이 있다. 새벽 진통하는 아내를 입원시키고 병원 장의자에 앉아 신문사에 보낼 원고를 쓰는 작가. “마감을 지킨다는 것, 자신의 감정과 거리를 둔다는 것. 그것이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길 위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 펜 끝이 뭉클, 떨린다.” 그는 아내를 통해 삶의 눈물겨운 순간과 조우하는 일이 많다. 아내가 백화점 할인매대에서 아이 겨울점퍼를 골라온 날, 그는 우연히 아내가 아이에게 소곤대는 말을 엿듣는다. “엄마가 미안해, 잘 빨고, 잘 다리면 괜찮을 거야, 엄마가 미안해.”(‘매대’)

개인적 추억이 깃든 가리봉동이 개명(改名)을 추진한다는 소식에 작가는 “주민들이 겪었을 남모를 소외와 아픔” 떠올리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꼭 이름까지 바꿔야 하나. “가리봉. 왠지 프랑스의 고풍스러운 지역 이름 같지 않나?”(‘가리봉 블루스’) 가리봉이란 이름의 추억에 바치는 유쾌한 헌사다.

곳곳에 폭소를 매복해둔 이 산문집에선 문학에서만큼은 한없이 진중한 이씨가 거듭 다지는 ‘소설가의 각오’와 만날 수 있다. 일테면 예술인 동네 헤이리를 호령하는 그의 사자후. “정말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동료 예술인들과 모여 살지 않는다는 것. 오로지 홀로 살아간다는 것. 예술의 본질은 ‘독(獨)고(Go)다이(Die)’라는 것.”(‘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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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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