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층이 넘는 서울 강남 및 수도권 일대의 고층 아파트 외벽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며 전직 장관과 유명 법무법인 변호사 등 부유층 가정 300여 곳에 침입해 수 십억원의 금품을 훔친 일명 ‘스파이더맨’ 절도범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3일 맨손으로 아파트 가스배관에만 의지해 고층 아파트의 베란다 창을 드나들며 절도 행각을 벌인 장모(27)씨와 장씨가 훔친 금품의 자금 세탁을 맡은 전직 은행원 박모(36)씨를 구속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말까지 104차례, 10억여원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 일당이 인정한 것만 100여건ㆍ10억여원”이라며 “이들이 최소 200여건의 추가 범행을 벌인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교도소 동기인 장씨와 박씨는 철저한 역할 분담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선천적으로 팔 힘이 좋은 장씨는 2006년말 출소 이후 하루 3~4시간씩 체력을 단련해 20층도 5분이면 오를 수 있도록 팔 힘을 길렀다. K은행에 근무하다가 사기범죄로 수감된, 전형적 화이트칼라 범죄자인 박씨는 장씨에게 절도 요령을 가르치는 한편 훔친 금품의 자금세탁을 맡았다.
지난해 11월 본격 범행에 나선 장씨와 박씨 앞에는 거칠게 없었다. 장씨는 괴력을 발휘해 17층 가정집까지 털었으며, 올해 3월 서울 도곡동 P아파트에서는 같은 라인에 있는 3층에서 9층 사이의 가정집을 모두 털어 현금과 명품 시계 등 1,700여만원의 금품을 훔치기도 했다.
장씨는 박씨 지시에 따라 지갑에서 돈을 뺄 때는 일부 금액을 남겨 피해자도 도둑 맞은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 또 낮 시간대에 미리 가스배관의 위치와 베란다 창이 열린 것을 확인하고, 일반인이 가장 깊게 잠이 드는 새벽 2시부터 범행에 나섰다.
경찰 관계자는 “지갑에 든 돈이나 금품의 80%만 들고 나오는 수법 때문에 실제 피해자 가운데 상당수가 도둑 맞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치밀한 수법에도 불구, 장씨 일당은 범행 때마다 장씨 소유 차량을 이용한 것 때문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은 각각 별도의 신고가 접수된 아파트 4곳의 폐쇄회로(CC) TV에 같은 색깔 싼타페가 찍힌 것을 중시, CCTV에 찍힌 번호판 앞 두 자리와 번호가 같은 싼타페 500여대를 추적해 장씨 일당을 붙잡았다.
장씨는 “20층 높이까지 올라가면 무섭기는 했으나, 출소 후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상태에서 박씨가 ‘아이가 중병에 걸려 치료비를 마련해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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